[두재균의 여자이야기] 달거리의 또 다른 이유

왜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마술에 걸리는 걸까요?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난소에서 배란된 알이 ‘그 이’의 정자와 만나서 자궁내강 막에 착상이 되는 것이 임신인데, 이에 실패하면 다음을 위하여 두꺼워졌던 자궁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피와 함께 배출되는 생리적인 현상이 월경(月經)라고 말입니다. 달거리는 성숙한 여성에게 일어나는 정상적 순환과정인 셈이죠.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궁’이라는 신부가 ‘임신’이라는 신랑을 맞기 위하여 비단 이불을 깔아 놓고 기다렸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신랑이 오지 않아 이불을 걷어 내면서 가슴 속 피눈물을 한 달에 한번 씩 흘리는 것이라고.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여성은 14세 전후에 초경을 경험하였는데 점차 초경 연령이 앞당겨져 9~10살에 생리대를 사야하는 여자아이가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월경은 여성 나이 49세를 전후해서 점점 사라지는데 이를 폐경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폐경기의 많은 여성들은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밤에 잠이 안 오는데다 무력감 때문에 살맛이 안 난다고 호소합니다. 얼굴은 푸석푸석해지고 뼈는 약해지고, 질 분비물이 감소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화를 잘 내게 됩니다.

이런 증세는 난소의 수명이 다해서 배란 기능이 쇠퇴하면서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 여성호르몬이 덜 분비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여성은 폐경 이후 이전에는 남성에 비해 잘 발생되지 않는 심장병도 급증합니다. 의사들은 여성들에게 여성호르몬을 인위적으로 공급하면 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으로 굳게 믿고 갱년기에 접한 억수로 많은 여성들에게 여성호르몬제를 투여하였습니다.

여기에 편승해 재미를 톡톡히 보면서 잘 나가던 제약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독일에 본사를 둔 ‘쉐링’이라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1997년부터 약 2만7500여명의 폐경 여성을 대상으로 호르몬 대체요법의 효과를 평가하는 ‘여성건강계획’(WHI, Women’s Health Initiative)연구를 진행했는데 2002년 7월 발표된 연구결과는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여성호르몬 대체요법이 홍조현상, 골다공증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입증된 반면, 정작 중요한 생명 유지와 직결되는 심장병을 예방해주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심장병과 뇌졸중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호르몬대체요법을 받은 여성은 받지 않는 여성에 비해 유방암 26%, 심장동맥질환 29%, 뇌졸중 41%, 정맥혈전증 111%가 더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때부터 여성호르몬 대체요법을 시행하던 의사와 이를 처방 받던 환자가 격감했고 급기야는 이러한 직격탄을 맞은 쉐링은 바이엘로 인수 합병되면서 간판까지도 내려야 했습니다. 그동안 피임약을 비롯하여 호르몬 약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회사가 망한 것은 그렇다고 치고 그러면 왜 폐경 이후에 심장병을 비롯한 혈관계질환이 급증할까요? 4년 전 저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드랙셀 대학의 조영일 교수팀과 혈액점도 측정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이때 얻은 잠정적 결론은 폐경이전 여성의 심장병 발현을 줄여주는 일등 공신은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 호르몬이 아니라 바로 월경이라는 것입니다. 여성은 매달 치루는 월경을 통하여 소량(약 35cc)의 혈액을 몸 밖으로 배출하면서 한방의 ‘사혈요법’처럼 인체의 혈액 점도를 낮게 유지하는데, 폐경이 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므로 혈액이 뻑뻑하게 돼 혈관 벽이 손상되고 급기야는 심장병이 생기는 것 아니냐하는 가설적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학술모임에 가서 하면 많은 의사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언젠가는 이 가설을 입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의 혈액이 포도주처럼 맑아야지, 토마토케첩처럼 찐득찐득해서는 혈액이 잘 돌지 않고 심장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명쾌한 사실이니까요. 여기에 월경의 또 다른 존재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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