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전쟁 벌이면서 분업까지 한다

생물 집단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른 집단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때 집단 내부에서 약간의 협동이 있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박테리아 세계에서도 생존이라는 공통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경향이 발견됐다. 이들은 협력해서 외부 집단과 전쟁을 벌이며 이 과정에서 노동의 분업까지 실행한다고 한다. 지난 7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내용이다.

주인공은 비브리오과(科)의 해양 박테리아. 대부분의 생체발광 박테리아를 포함해 콜레라나 장염을 일으키는 균 등이 여기 포함된다. MIT의 환경미생물학자인 마틴 폴즈 교수팀은 이들 박테리아를 두 계통씩 같은 접시에서 배양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상황을 조성했다. 그 결과 상대 측을 죽이는 항생물질을 분비하는 사례, 즉 집단 간 전쟁 상황이 흔히 나타났다. 185계통의 균주를 대상으로 3만5000건의 상호작용을 조사한 결과 44%의 균주가 최소한 한 계통 이상의 다른 균주의 성장을 억제하는 능력을 보였다. 또한 86%의 균주는 하나 이상의 다른 균주에 의해 성장을 억제당했다.

흥미로운 것은 항생물질을 분비해서 전투를 수행하는 방위군은 소수였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 군집의 개체 5%가 다른 군집의 개체 25% 이상을 죽일 능력을 갖춘 경우도 있었다. 군집의 나머지 대부분은 해당 항생물질에 면역력이 있지만 스스로 이를 생산하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이들 방위군을 경제학의 공공재에 비유했다. 맑은 공기나 국방처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재화라는 말이다. 항생제를 생산하지 않는 개체들은 무임승차를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임승차 개체들도 전체 군집이 사용할 수 있도록 효소 등을 생산해서 제 몫의 기여를 하기 때문일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이는 미생물이 사회적 역할에 따른 노동의 분업을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최초의 사례다.

이 같은 집단 내 협력은 이중으로 놀라운 것이다. 항생물질을 만드는 능력은 해당 유전자를 지닌 개체의 번식률을 높이는, 이기적 유전자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경쟁 상황이라면 이 능력은 가장 가까운 친척을 대상으로 발휘돼야 마땅하다. 친척은 서식처나 필요 자원이 비슷하기 때문에 강력한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험 결과 이 같은 내부 경쟁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조절되는 것처럼 보인다.

박테리아의 사회 생활은 무시될 때가 많지만, 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해양 바이오매스(총 생물량)의 약 90%는 미생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바다 표면의 물 1g에는 약 100만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들 미생물은 영양소를 생산하고 유기물을 순환시키는 등 바다가 번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번 연구는 신약 개발과 관련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 전통적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려면 이제는 해양 박테리아를 주목해야 한다. 지금껏 발견된 항생물질은 대부분 토양 박테리아에서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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