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그 순간에 집중; 안 되면 판타지 활용

제목이 무슨 자기계발서의 소제 하나를 따온 것처럼 무미건조해서 죄송하다. 하지만 제목이 말하는 바가 아래 내용의 전부이기에 저런 모양이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잠자리 만족을 위해 머릿속 판타지를 돌리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어른들 말씀처럼 섹스도 오롯이 섹스에만 집중할 수 있는 때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섹스를 막 시작했을 때는 오늘 밤에는 이 테크닉을 써보자, 저 방법은 어떨까 등의 오르가슴을 느끼는 데 필요한 구상이란 게 없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어른들은 못 하게 했단 말이지, 하는 생각에 매 잠자리가 아주 즐거웠다(가끔 너무 즐거워 인생의 방향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 뻔도 하고). 틈만 나면 늘 남자와 섹스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 그래서 섹스를 시작하면 무드에 상관없이 바로 집중한다. 몸과 마음이 항상 섹스 대기 상태니까.

내게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섹스 때마다 오르가슴을 느끼나’이다. 일단 항상 섹스를 그리워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순간’이 왔을 때 별다른 노력 없이 자연스레 섹스에 집중할 수 있다. 딴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발기 후엔 오르가슴이다….흠, 내가 붙인 제목의 여파인지 정답을 썼음에도 어쩐지 자기계발 독려문구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인가. 삶을 분 단위로 나누고, 일이고 놀이고 할 것 없이 뭐든 계발하는 게 범세계적인 트렌드이나 섹스할 때만큼은 ‘개발’이 중요하다. 판타지를 침대에서 좀 더 쓸모 있게 만드는, 그런 개발 말이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섹스에 대한 생각만으로는 모자라는 느낌이 들 때가 닥치는데, 잠들어 있던 판타지가 나설 시간이다.

저녁, 내 남자와 섹스를 한다. 위에서는 키스와 삽입을 동시에 하느라 바쁜 눈치인데, ‘잠자리에서는 무조건 집중하세요!’를 설파하던 나는 정작 몰입이 잘 안 되어 머릿속이 전쟁이다. 영화 <초콜릿>에서 줄리엣 비노쉬는 조니 뎁과 사랑을 나누느라 맛있는 초콜릿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데, 왜 나는 냉동실 구석에 던져 둔 다크 초콜릿 70%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걸까. 이도 닦았는데, 섹스 끝나고 초콜릿을 먹으면 분명 저 남자는 귀찮게 이를 두 번 닦을 바에야 초콜릿 따위 안 먹겠다, 라며 잔소리를 해대겠지. 어떤 신문기자가 쪽지를 남겼던데, 내용이 너무 짧아 알아보려면 국제전화를 걸어야 하나, 귀찮아, 등의 잡념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상상을 한다. 머릿속으로 멋진 배우-나는 충무로가 아닌 브라질 산 ‘에로 다크 히어로’를 소환한다-를 침대로 초대한다. 당신 눈앞의 상대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혼자 판타지나 꿈꾸고 있으면 진짜 흥분한 게 아니잖아, 라고 사람들은 말할 테지. 안다. 하지만 내 눈앞의 상대만 집중하고 흥분해서 오르가슴을 얻을 타이밍은 이미 놓쳤다. 그러니 뇌를 급작스레 흥분시킬 새로운 게 필요한데, 판타지야말로 최고의 동력제다.

판타지에서는 남자의 정액을 온 얼굴과 머리에 받아도 행복하고(현실에서 나의 허락 없이 파트너가 그랬다간 다음 번 섹스 날짜는 영원히 미궁이다!), 손가락으로 남자의 항문을 요리조리 농락해도 엉덩이를 걷어차일 염려는 없다. 서로의 성기가 연결되어 있을 때 못된 판타지를 마음껏 풀어헤치면 시험을 5분 앞두고 벼락치기하는 학생처럼 온몸이 바짝 날을 세운다. 나는 렌즈를 빼면 거의 장님과 다를 바 없지만 이 섹스 판타지를 부를 때만큼은 눈이 나쁜 게 도움이 된다. 판타지 속 브라질 배우의 출현으로 눈이 최고로 흐리멍덩해져도 눈앞의 남자는 오직 자신의 피스톤 운동으로 여자가 혼미해진 거라 기뻐하니 말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것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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