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엔 3가지가 없습니다”

[동영상뉴스]

[인터뷰] 3연임 중인 정진엽 원장

 

“우리 병원엔 종이와 필름, 적자, 노사 분규가 없습니다. 100% 디지털 병원으로 효율을 극대화한데다 교수와 사무직원들이 단합된 마음으로 최고를 지향하는 덕분입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진엽(57·정형외과) 원장은 2008년 취임한 이래 3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6월 3번째 병원장 취임식에선 대내외에 ‘창조 경영’을 선포하고 또 한 차례의 도약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 원장은 2009년 병원을 종합전문요양기관으로 인정받으며 개원 이래 최대 규모의 경영실적을 달성했다. 2010년엔 1050억 원의 공사비가 들어가는 신관 기공식을 했다. 내년 3월 개관하는 470 병상 규모의 신관에는 암병원과 함께 국내 최초의 뇌신경병원이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전체 1400 병상, 규모로 국내 5위가 된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4+1’의 병원지형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의 ‘4강’에 서울성모병원이 도전하고 고대의료원, 경희의료원 등이 뛰어오는 형세에 갑자기 다크호스인 분당서울대병원이 ‘4강’의 뒷자리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는 것. 분당서울대병원은 무엇보다 외형이 아니라 내실에서 뛰어난 병원으로 의료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정진엽 원장이 있다. 그를 25일 원장실에서 만났다.

-환자 입장에선 진료 수준이 가장 관심사입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복강경, 흉강경, 뇌혈관수술, 로봇수술 등 작게 절개하는 수술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배나 가슴, 머리 등을 크게 절개해야 수술이 가능했지요. 이제는 필요한 부위에 작은 구멍을 뚫어 카메라와 의료 기구를 넣고 모니터를 보며 환부를 수술하는 최소침습 수술법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히 외과의 한호성 교수는 세계 최초로 간 이식 제공자의 간우엽을 복강경 수술만으로 절제하는 데 성공했지요. 국내 최초로 식도암을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데 성공한 전상훈 교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국내 최대의 수술 건수를 기록한 위암 내시경의 김형호 교수, 폐암의 김관민 교수가 우리 병원에 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없는 3가지 중 하나가 종이와 필름이라고 하셨지요. 그게 환자에게는 어떤 도움이 됩니까?

▲전산화가 되면 진단과 치료가 더 정확해집니다. 예를 들어 영상의학과에서 CT를 판독할 때 의무기록을 함께 띄워놓고 보면 정확성이 크게 높아집니다. 약품정보를 담은 소형칩이 정보를 송신하는 RFID와 약품별 바코드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약물을 유통하고 투약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에게 잘못된 약을 주입하는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아마 전국에서 우리 병원의 오류가 가장 적을 것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기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같은 병이라도 우리 병원의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싸고 입원기간도 짧습니다. 이 같은 성과는 효율적이고 정확한 환자 및 물류 관리 시스템의 덕분입니다. 병원에서 쓰는 약품이나 진료재료가 수만 가지입니다. 이것을 자동으로 관리하니까 효율성이 매우 높습니다.

-의료진의 연구실적은 어느 수준입니까.

▲지난 해 우리 병원 의사들은 820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9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병원이 이렇게 논문을 많이 쓰는 곳은 보기 힘들 겁니다. 논문 편수로 국내 5위 안에 들어가는 데다 SCI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자들의 모든 기록이 전산화돼 있어 논문을 쓰기가 무척 편하다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논문을 쓰려면 자료 찾는데 3개월씩 걸리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곧바로 해결됩니다. 연구소 하나 없는 형편에서 이정도 연구실적을 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디지털 병원으로 인정받았지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료 정보기술 연구단체인 ‘HIMSS 애널리스틱스’는 병원의 정보화 단계를 0에서 7까지로 분류합니다. 7단계라는 인증을 받은 병원은 세계에 8곳인데 모두 미국에 있었습니다. 2010년 10월 우리 병원이 인증을 받아 9곳이 됐습니다. 우리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해마다 20여 개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견학옵니다. 최근에도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페루 등에서 찾아와 견학한 뒤 가능하다면 자국의 병원에도 도입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내년 3월에는 320억원을 투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차세대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수출을 염두에 두고 다국어지원 기능을 넣을 예정입니다.

 

-차세대 EMR 시스템이 도입되면 지금과 무엇이 달라집니까.

▲지금 시스템도 세계 수준이지만 10년 가까이 쓰다 보니 사용자들의 요구사항이 많았습니다. 기존의 EMR 시스템이 개발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면 새 시스템은 사용자 위주로, 훨씬 더 편리하게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대쉬보드를 지금 보여드리지요(그는 접견실 벽에 붙어있는 대형 모니터에 인식 카드를 통과시킨 뒤 그 자리에서 시연을 보였다). 과거에는 의무기록은 기록대로, 영상은 영상대로(영상전송시스템을 통해) 따로 띄워서 보아야 했는데 보시다시피 하나로 통합됐습니다. 이것은 차세대 EMR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의 파생품을 바로 적용한 것입니다.

새 시스템은 아이폰에 앱을 하나씩 추가하듯 필요한 기능을 계속 추가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계됐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기존에는 새 기능을 추가하려면 시스템 자체를 고쳐야 했습니다. 새 시스템은 직원 간에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비롯해 최첨단의 편리한 기능을 통합해 구현할 예정입니다.

– 지난해엔 신관 증축 비용으로 300억원을 적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명목상 70억 원 적자지만 내막은 230억 원 흑자입니다. 대학병원으로서는 드물게 대규모 흑자를 내고 있는 비결을 밝혀주십시오.

▲가장 큰 요인은 조직이 매우 슬림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병원 행정 부문 직원의 숫자가 연건동 서울대병원의 1/3 수준입니다. 2003년 개원 당시부터 디지털 병원으로 출범한 덕분이 큽니다. 교수를 포함한 전체 직원 숫자가 협력파트너(그는 병원에서 용역직원이란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한다. 거리감을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직원을 합쳐 3000명 정도 됩니다. 저희 직원은 그 절반을 약간 넘고요, 나머지는 아웃소싱을 했습니다. 병원은 인건비 비중이 특히 높은 분야입니다. 총 의료수익의 45%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인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경영 수지에 직결됩니다.

-취임 이래 병원이 내적 외적으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요인을 꼽아주시지요.

▲병원의 조직문화 덕분으로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대단히 협조적입니다. 원래 가장 말을 안 듣는 집단이 교수이고 그 중에서도 의대교수는 악명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수들은 매우 협조적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열의가 대단하지요. 교수를 포함해 전 직원이 협심하고 있습니다. 2003년 개원 초기부터 이 같은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에는 제가 기여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원 당시 제가 교육연구실장을 맡았습니다. 개원 전부터 금요일마다 40~50명씩 인재개발원에 가서 교육을 시켰지요. 교육시키고 술 먹고 뻗고, 다음 주에는 또 다른 팀하고 그런 일을 반복했지요. 그 때부터 “잘해 보자”하는 병원 분위기가 잡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과제와 포부를 밝혀주시지요.

▲가장 큰 과제는 내년 완공되는 신관을 잘 개원하는 것입니다. 신관에는 암병원과 뇌신경병원이 들어섭니다. 두 병원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데에 신관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좋은 병원에 더 많은 공간을 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들 하고 있습니다. 신관이 문을 열면 그 다음 과제가 연구소를 짓는 것입니다. 교수들이 열정이 엄청난데 연구소도 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의생명연구소 설립은 이미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첫 삽을 뜨려고 합니다.

포부는 ‘창조 경영’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다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보자는 것이지요. 각 부서별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습니다. 새롭고 기발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고객을 대하는 방식의 혁신도 포함됩니다. 고객을 병원 경영에 참여시켜 고객의 의견을 실제 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내년 개원할 암병원 파트의 워크숍에서는 ‘외래 환자가 1주일 만에 수술까지 마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는 열기가 높습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2008년 노사상생협력대상 국무총리상을, 지난해엔 고객중심경영 서비스부문 대상(한국정보산업연합회)과 대한민국 글로벌 경영인 대상 최고대상(한국경영평가원)을 받으셨지요. 경영을 따로 공부하셨나요?

▲유명하다는 경영서를 이것저것 읽었지만 제가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습디다. 제 친형님들에게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둘째 형은 옛날에 대기업 사장을 지냈습니다(동아건설 해외부문 사장으로 리비아대수로 공사를 따온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정진삼씨다). 셋째 형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유명한 분이지요(국내에 배스킨라빈스와 스타벅스를 도입한 정진구 전 스타벅스코리아 사장을 말한다). 두 분이 제 멘토입니다. 제가 5남1녀의 막내인데 토요일마다 형제들이 모두 모입니다. 1987년 어머니(작고)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지금까지 계속되는 전통이지요. 형님들에게 사람 대하는 법, CEO와 아랫사람의 관계 설정, 고객 감동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저는 복도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하이파이브를 하며 손바닥을 마주칩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이제는 다들 좋아하는 눈칩니다. 이건 작고한 하권익 전 삼성서울병원 원장에게 배운 것입니다.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장은=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분당서울대병원 교육연구실장, 진료부원장을 지냈다. 2008년 원장으로 취임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소아 뇌성마비 치료의 권위자다. 대한병원협회 재무위원장, 대한정형외과학회 국제위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사외이사,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기준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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