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옆집 애는 그 주사 맞는다는데…”

엄마들 여름방학 숙제, 아이들 키 키우기

다음 주부터 방학이다. 성적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어떤 병원을 예약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비염 같은 고질병 치료, 건강검진, 입원을 필요로 하는 수술 등이 대세였다. 지금 엄마들이 예약한 병원은 <1> 성장클리닉(키), <2> 안과(드림렌즈), <3> 치과(교정)에 몰려있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

<1> 키 정말 키울 수 있을까

▶‘루저’는 절대 안돼!

“아들의 키가 138cm예요. 초등학교 때는 여자애들이 성장이 더 빠르고 똑똑해 아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방학 때 키를 키워 주고 싶어요.” 초등 4학년 아들은 둔 김미숙 씨의 말이다. 김 씨는 평소 아들에게 칼슘제를 먹이고 성장에 효과적이라는 농구를 꾸준히 시켜왔다.

“딸의 키가 150cm예요. 반에서 제일 커요. 하지만 가슴도 불룩해요. 가슴 발육이 시작되면 2년 안에 생리가 나온대요. 생리가 나오면 성장을 멈춘다는데 키가 160cm도 안 될까봐 걱정이에요.” 같은 학년의 딸을 둔 이미영 씨는 아들을 둔 부모와 달리 ‘딸의 빠른 성장’이 고민이다. 이 씨는 최근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주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번 방학에 ‘성장클리닉’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최근 한 조사에서 한국 엄마가 바라는 자녀의 키는 남자 182cm, 여자 168cm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남자 평균키는 174cm, 성인 여자 평균키는 160cm이다. 부모들의 ‘키 눈높이’가 현실보다 10cm 가량 높아져 있다는 뜻이다.

▶왜 키에 집착할까

“늙어서 유산으로 3000만 원을 남기면 애들한테 대접 받겠어요? 지금 3000만 원 투자해서 롱다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김유미(45)-

“강남 목동 등에 사는 학부모는 초등 저학년 필수코스로 성장클리닉을 찾고 있어요. 의사 집 아이들이 맞으니 더 빨리 확산되는 것 같아요.” -서지숙(42)-

“성장판이 닫히고 나면 맞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할 수 있다고 할 때 조금이라도 노력하고 싶어요.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요.” -박정자(50)-

성장클리닉이 열풍인 것도 맞고, 키 크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알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키 크기를 열망하는 걸까.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니콜라 에르팽의 저서 ‘키는 권력이다’에 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남자의 키가 신분 연봉 연애와 결혼생활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통계를 통해 분석했다. 결과는 ‘1인치(2.54㎝) 커질 때마다 연평균 임금이 789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5㎝ 커질 때 마다 자살 위험이 9% 낮아지고, 아이가 없는 남자는 아이를 1명 이상 둔 남자보다 3㎝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키의 프리미엄(Height Premium)’도 주장했다. 키 큰 남자는 가방끈이 더 길고, 월급을 더 많이 받고, 더 빨리 출세한다는 것.

못 생기면 성형수술을, 뚱뚱하면 지방흡입술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짧은 다리는 어쩔 것인가. 닫힌 성장판은 억지로 열 수 없다. 부모를 조급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호르몬 억제, 성장호르몬 투여

“지수는 키가 커서 좋겠어요.” “아니에요. 벌써부터 성호르몬 억제주사를 맞고 있어요. 가슴에 멍울이 잡히더라고요. 그 주사를 맞아서인지 가슴 멍울은 없어졌는데 키가 크지 않는 것 같아요.”

성호르몬 억제주사는 원래 만 9세 이전 성조숙증 진단을 받은 여자 아이들이 맞는다. 하지만 생리를 늦추기 위해 만 9세가 지난 여자 아이들도 비보험으로 맞을 수 있다. 보험이 적용되면 1회 15만~20만 원이고, 적용되지 않으면 30만 원 정도가 든다.

4학년 여자 엄마들은 학교수영 수업을 앞두고 가슴, 생리, 키 이야기가 한창이다. 옆에 있던 혜수 엄마가 거든다. “3학년 초 가슴에 멍울이 잡혀서 검사를 했더니 뼈 나이가 12세로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키도 작고 말라서 가슴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검사 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혜수 키가 128cm로 또래보다 작았는데 2년 안에 생리를 하면 150cm도 안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혜수 아빠와 결론을 내렸어어요. 성호르몬 억제 주사와 키를 크게 하는 성장 호르몬 주사를 함께 맞히기로요.”

▶매일 밤 1대씩

혜수는 1년 째 두 종류의 주사를 함께 맞고 있다. 성호르몬 억제 주사는 생리주기인 28일마다 1회, 성장호르몬 주사는 매일 밤 맞는다. “주사 바늘이 가늘어서 아프지는 않아요. 그래도 여기저기 매일 찔러대니 배에 멍자국 같은 게 남아있어요.”

혜수 엄마의 만족도는 어떨까. “일단 가슴 멍울이 없어졌고, 키가 7cm 정도 자랐어요. 만족해요. 하지만 나중에 클 키가 미리 큰다는 이야기도 있고, 2년은 맞아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 부작용이 있다는 소문 때문에 늘 불안한 건 사실이에요.”

옆에 있던 지훈 엄마가 거든다. “성장클리닉에 오는 여자, 남자의 연령이 달라요. 여자들은 주로 초등 3, 4학년이고 남자는 중학생인 경우가 많아요.”

여자 아이들은 생리를 시작하면 성장판이 닫히지만 남자 아이들은 중고교까지 열려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학생도 중학생이 될 때까지 키가 크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성장클리닉을 방문하게 된다.

▶키 주사 맞으면 키 클까

혜수 엄마가 들려준 우스운 이야기 하나. 키 작은 자녀를 둔 엄마들이 성장클리닉을 방문하면 성인 예상키가 거의 여자 155cm, 남자 165cm가 나온단다.

“뭐랄까. 2% 부족한 키죠. 정말로 인위적으로 노력하면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수치이기도 하고요. 아님 정말 그 정도밖에 안 클 지도 모르고요.” 자녀의 키가 작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은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답은 ‘예’일 수도 있지만, ‘아니오’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성장호르몬 주사는 2차 성징이 오기 전까지 맞아야 효과가 있다. 2차 성징은 사춘기에 주로 나타나는데 여자의 경우 가슴이 발달하고 생리를 한다. 남자는 변성기가 오고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이 주사는 병으로 인해 성장호르몬 분비가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성장호르몬 수치가 정상인데도 키가 작은 아이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

성장호르몬주사는 원래 성장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아 키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적용되는 치료법이다. 보건복지부는 △소아성장호르몬결핍증 △터너증후군 △소아만성콩팥기능저하증 △성인성장호르몬결핍증 △프라더윌리증후군(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유전병) 등 5개 질환에 대해서만 보험을 인정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도 키가 크지 않아서 맞는 주사는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모든 부작용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주사 맞아도 70% “효과 확인 못 해”

2007년 코메디닷컴 조사에서 국내 성장호르몬제의 시장규모(500억~600억 원)와 보험급여 청구 등을 종합했을 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어린이는 약 5000명 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0%인 3500명이 효과가 없는데도 주사를 맞은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 학계에서는 성장판이 완전히 열려 있으면서 △2~15세 연 4~5cm 이상 크지 않을 때 △동갑 100명 중 가장 작은 3명에 포함될 때 △X-ray 상 뼈 나이가 호적나이보다 2살 어릴 때 △또래보다 10㎝ 이상 작을 때에 성장호르몬을 처방하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 중이다.

국내 성장호르몬 시장은 연간 600억 원대 규모다. 매년 10%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데 어린이 성장클리닉 호황이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민건 바른정형외과 원장은 “성장호르몬 주사의 부작용으로 척추측만증이나 고관절 탈구, 일시적인 당뇨병, 부종, 두통, 구토 등이 생길 수 있다”며 “부작용에 대한 검사도 꼼꼼히 받은 후에 주사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가격=중형 자동차 한 대

성장호르몬 주사 가격은 웬만한 월급쟁이 연봉만큼 비싸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한 달에 100만~150만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아이의 몸무게에 따라 주사액이 양이 달라지므로 비용이 또 달라진다. 주사 기간을 2~4년을 잡는 게 보통인데 2년 치료에도 300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김은영 고은가정의학과 원장은 “100% 과학적으로 검증된 요법이 아니기 때문에 주사를 맞기 전에 신중해야 한다”며 “억지로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키를 키우는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허운주 기자 apple297@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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