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의무기록, 제대로 적히고 있나

“종현이의 관 뚜껑을 덮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다시 보았어요. 그동안 항암 치료를 받느라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는데… 관 속의 아이는 부기도 빠지고 여태까지 제가 봤던 어떤 모습보다도 평온해보였습니다.”

27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환자 샤우팅(Shouting) 카페’ 행사. 환자와 그 가족들이 치료 과정에서 느낀 억울함과 불편함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마련한 자리다. 발표자 김영희씨는 정맥에 투약해야 하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척추내 공간인 척수강에 주사한 것으로 보이는 의료사고로 2년 전 세상을 떠난 정종현군의 어머니다.

김 씨는 아들을 떠나보내고 빈크리스틴 관련 논문을 찾아봤다. 빈크리스틴이 척수강에 들어가면 사망한다고 나와 있었다. 아들을 담당했던 교수의 대답은 “동일한 증상으로 사망했다고 해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내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나”였다. 김 씨는 그 해 7월부터 병원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실적으로 환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의사가 전담하는 의무 기록은 전문용어로 가득해서 이해조차 쉽지 않다. 무엇보다 과실은 스스로 기록하지도 않거니와 동료 의사가 과실임을 증언해주는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

로봇 수술 대상이 아닌 신우암 환자인데도 로봇 수술을 받고 사망한 탤런트 박주아 씨도 비슷한 경우다. 십이지장에 구멍이 뚫린 것은 수술 중에 발생한 의료 과실이라고 유족들은 주장했다. 병원 측은 구멍은 수술 이후에 발생한 것이며 수술 때 장천공 등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유족은 병원 측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하지만 담당 검사가 의무기록을 통해 병원 측 과실을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유가족은 수술 영상을 달라고 병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유족 김 씨는 가장 직접 증거가 될 수 있는 수술 영상도 확보하지 못한 채 병원과 싸우고 있다.

샤우팅 카페에 자문단으로 참석한 이인재 변호사는 “진료기록 검증이 어려운 이유가 의사가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기록부에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소개된 사례 중에는 한국 최초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받은 병원의 사건도 있었다. 일류 병원이라고 해서 더 정직하다고 믿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난 4월에는 전립샘 적출술 후 사망한 환자의 수술 기록을 작성하지 않은 병원이 유가족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 판결이 있었다. 이는 수술 뒤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수술 기록을 작성하지 않은 이례적인 경우지만 동시에 의무기록 작성의 중요성을 환기시켜 주는 판결이기도 하다.

내가 받은 치료가 온전히 다 기록되고 있을까. 문제가 발생한 이후이든 이전이든 기록을 고의적으로 누락하면 병원과 의사에는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의사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다. 의료인들이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마음속에 되새겨 봐야할 것이다. 그런 의사가 대다수를 차지할 때까지 환자들의 샤우팅, 세상을 향한 아우성과 외침은 계속될 것이다.

    정승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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