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물’이 많은가요?

내가 섹스를 아직 글로 익히던 시절, 최고의 선생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한 여성대백과였다. 70년대에 만들어진 책이라 세로쓰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섹스와 부부관계 조언을 위한 섹션을 달달 외울 정도로 참 열심히 읽었다. 덕분에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성생활 상담 Q&A 사례가 있는데, 첫날밤에 남편이 부인에게

“당신은 물이 많군요.”라고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진

상담자의 답변이 걸작인데, 대화 내용을 보니 당신 남편은 총각이 아닌 것 같다,

라고 안쓰러운(?) 톤으로 어드바이스를 마무리한 것. 물론 그 남자의 첫날밤 버진

여부 따위가 궁금해서 책 내용을 기억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물, 물, 물. ‘물’이

많은 섹스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공상 때문이다.

그 책을 뒤적거리던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의 섹스 세계관의

핵심어는 ‘물’이고, 섹스 만족도를 체크할 때 나는 젖는 정도에 가장 중점을 둔다.

사실 기분 좋은 키스만으로도 여자의 그 곳은 금세 촉촉해진다. 문제는, 끝까지 물이

일렁이듯 계속 젖게 만들 수 있는가이다. 마음은 있는데, 서로 눈치를 보고 재고

있던 C란 남자가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다 흥에 겨워 그와

키스를 했는데, 너무 좋은 나머지 내 팬티 앞부분이 조금 젖어버렸다. 입맞춤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을 버려두고 C와 그의 집으로 달려가면서 ‘키스부터 대히트니 보나마나 오늘

섹스는 내 인생의 레전드’ 라는 생각에 마음은 이미 오르가슴.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섹스를 중간에 그만두어야 했다. 인터코스가 너무 길었고, 나의 남쪽 그 곳은

말라 버렸다. 참을성이 훌륭한 ‘남자’에게 다량의 알코올이 들어가면 제아무리

잘 젖는 여자도 감당하기 힘들다. 조금의 융통성-예를 들면, 윤활액을 콘돔에 들이붓거나

틈나는 대로 페니스를 입에 물기-을 발휘했으면 죽이는 키스 메모리를 안고 그대로

오르가슴까지 폭발했을 텐데, 욕심나는 것이 있으면 물불 안 가리는 비열한 어른이

되기 전이라 여러모로 아쉬운 기억이다.

사실 제대로 물이 많은 날은 오럴 섹스를 할 때도 차이가 있다. 물고 있는 남자의

페니스를 입에서 떼는 마지막 순간까지 입안과 손바닥을 충분히 적실 정도로 침 분비가

활발하다. 침대에서 남자를 압도하는 여자의 테크닉은 가슴 흔들기(이것 역시 출렁이면

더 좋다!)가 아니라 침을 많이 사용하기란 걸, 아는 이는 다 안다. 그리고 섹스할

때 천연 윤활액을 풍부하게 만들려면 타고난 것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이 더 필요하다.

항상 촉촉한 여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규칙적인 섹스 라이프가 절실하다. 좋아하는

남자와 즐겁게, 규칙적으로 잠자리를 가지는 것이 베스트이나 혹 기회가 모자란다고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손가락이 나설 때다. 수용성 윤활액을 검지와 중지에 잔뜩

묻히고 질벽을 15분 이상 자극하는 마사지 타임으로도 물 많은 여자가 되기에 충분하니까.

아, 물론 손가락과 페니스가 함께 입장하면 더 좋다. 제아무리 윤활액을 뒤집어쓴

미끈한 손가락일지라도 손가락에 신경세포가 달린 촉수가 달리지 않는 이상 살아

꿈틀거리는 페니스보다 나을 리가 없지 않나.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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