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지금은 나쁜 의사들 전성시대?

임재현의 영화 속 의학이야기

때 아닌 마초 논란에 인터넷이 시끄럽습니다. 수감된 전직 국회의원을

두고, 석방을 지지하는 비키니 차림의 사진이 올라온 것이 문제의 시작이지요. 이에

대해 언급한 팟 캐스트의 남자 패널들에 대한 남성 우월주의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초는 스페인어로 수컷이라는 이야기인데, 그야말로 생물학적인

표현입니다. 남성적이라는 동물적인 표현을 마초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초이즘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이 있습니다. 바로 나쁜 남자입니다.

나쁜 남자는 어떤 남자인가요? 쌀쌀맞고, 무뚝뚝하고, 신경써주지

않다가 한 번씩 관심을 보이는 남자, 다른 여자들을 수없이 만나다가도 가끔씩 나에게

눈길을 던지는 남자, 그래서 미워죽겠지만 또 보고 싶어지는 남자, 이런 남자를 나쁜

남자라고 하지요. 그 정도가 심해지면 나쁜 놈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나쁜 놈들이 화면을 채우는 영화, 마초이즘이 가득한 한국형

갱스터 무비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하정우,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입니다. 리얼리즘을 강조하는 윤종빈 감독의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최민식과 하정우의 묘한 밸런스, 조진웅, 곽도원 등 조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2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 내내 몰입하게 하는 짜임새 있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쉬운

점은 3개월 동안 연습을 했다는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짧게 끊어 치는 조연들의

사투리 대사는 오히려 감칠맛이 났으나, 호흡이 긴 두 주인공의 대사는 중간 중간

몰입을 방해하는 옥에 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른바 웰메이드 누아르입니다.

약간은 어설프고, 투박하고, 사람 냄새가 풍기는 한국 조폭들의 이야기,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밀수된

필로폰을 적발, 이것을 일본으로 팔아넘기고 세관을 뜨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선이 닿는 폭력조직과 접촉합니다. 그 조직의 보스인 최형배(하정우)는 같은 경주

최 씨라는 것 하나로 최익현을 대부로 모시게 됩니다. 최익현은 특유의 입담과 지략,

인맥으로 최형배를 도와 조직을 키우는데 공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의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는 없는 것, 이들의 갈등은 커져만 갑니다. 특히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대결로 치닫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누구 나쁘지 않은 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관직원들부터, 조직 폭력배는 말할 것도 없고, 검찰, 경찰, 심지어 정권까지, 정말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조직이라는 조직은 모두 마초이즘으로 범벅이 된, 나쁜 놈들

경연장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나라가 빠른 시간에 경제 성장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조직을 위해 희생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것,

인맥과 서열을 이용한 뒷거래 등 우리 근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아픈 역사의 잔재로 남아 세대 간의 갈등을 초래하고 있지요.

개발 도상에서는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선진국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끊어야할 족쇄가

아닐까 합니다.

의료계에도 일본식 도제 교육의 흔적이 남아 아직도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면서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배우고,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친 결과 엄청난 의료 기술의 발전을 낳은 것은 사실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외과적인 수기나 환자를 치료하는 테크닉을 익히는 데에는 무서운 교육만 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러한 발전은 우리나라 외과 분야의 눈부신 성장으로 이어져 이제

외국 의사들이 우리 기술을 배우러 오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그늘에는

의사들의 인성교육 부족으로 인한 부끄러운 뉴스들도 간혹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의료 교육 시스템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전의 군대식 문화에서 벗어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이제 3월이 되면 새로운 의사들이

수련을 시작할 텐데요, 어쨌든 새내기 인턴의 눈으로 보면 병원 내 모든 선배 의사는

공포의 나쁜 의사(?)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나쁜 의사들의 전성시대는 TV 모니터 속에 있었습니다. ‘의가형제’의

장동건으로 시작한 나쁜 의사의 계보는 최근의 의학 드라마를 보면 ‘외과 의사 봉달희’의

이범수, ‘뉴하트’ 의 조재현, ‘싸인’의 박신양, 그리고 가장 최근 ‘브레인’의

신하균으로 이어집니다. 나쁜 의사는 보통 화를 잘 내고, 까칠하고, 후배 의사들을

박살내고, 여자 의사들을 함부로 대하고, 환자들에게 차갑습니다. 그러나 질병 앞에서는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으로 생명을 구합니다. 뛰어난 의술을 펼치지만 본인은 정작

불행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질병과 싸우는, 외과 의사들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대부분 의학 드라마의 스토리 구조입니다. 마음속에는 따뜻한 감성이

흐르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진료 현장에서 차갑고 냉정한 의사로 살아야하는

외과 의사들은 정말 나쁜 남자가 되어야 할까요?

의과대학 시절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좌우명이 있습니다.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투에 나가는 검투사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질병에 맞서 싸울 때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매의

날카로운 눈, 사자의 용맹스런 용기, 그리고 여자와 같은 부드러운 손이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들에게 끌리는 이유는 차가움 속에 감추어진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TV 드라마 속의 나쁜 의사들, 질병과 싸움하는 데는

사납고 매정합니다. 그러나 환자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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