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볼> 당신의 몸값은 얼마입니까?

[임재현의 ‘영화 속 의학이야기’]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끝났지만 FA시장은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몸값이 거래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수십억에서

백억에 이르는 금액은 우리네 일반 시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군요. 과연 그들의

몸값은 어떻게 결정이 될까요?

프로야구의 이면에 흐르는 트레이드 시장의 엄청난 돈, 그 시장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습니다. 야구 영화이지만 야구 경기보다는 야구장 덕 아웃 뒤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스카우트 시장을 파헤친, 영화 [머니 볼]입니다.

2002년, 우리나라는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해 만큼은 축구의 그늘에 야구가 가려져 있었지요. 하지만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에서는 기적 같은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8월 14일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승리한 후 캔사스시티까지 내리 20연승을 기록,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쓰는 사건을 만듭니다. 전 세계 야구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20연승 기록의 신화,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이고, 머니 볼 이론에 근거한 수학적이고

통계적인 분석 야구의 새로운 흐름, 역시 현대 야구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평이한 이야기가 감동적인 영화로 탈바꿈된 것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아론 소킨의 각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역시 브래드 피트입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으로 재직 중인 빌리 빈이 영화 [머니 볼]의 주인공인데, 그 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보여주는 중년의 열정과 에너지는 관객을 흡인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단이지만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선수

확보에 돈을 많이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나마 구단에서 키운 선수들이 기량이

좋아져 포스트시즌에는 진출을 하지만, 월드시리즈의 문턱을 넘지는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키워낸 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져 재계약을 못하는 상황이 되지요. 고민을 거듭하던

빌리 빈 단장(브래드 피트)는 머니 볼이라는 이론을 접하게 됩니다. 선수를 선발하는데

스카우트의 직관이나 경험 등이 아닌, 모든 선수에 대한 데이터를 통계적이고 수학적으로

분석, 저평가된 선수를 싸게 영입하는 이론입니다.

머니 볼 이론을 도입한 빌리 빈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꼴찌였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20연승까지 기록하는 경이적인 팀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아쉽게도 역시

월드시리즈 진출은 실패하지만 통계 야구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접목시켜 성공한 구단이

되지요. 이렇게 영화 [머니 볼] 은 표면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승리하는 감동적인 영화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 무척 어두운 현실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부상으로 제 몫을 못하는 선수를 가차 없이 잘라버리고, 필요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동고동락한 동료를 웃돈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시원한 장타력이 있기보다는

볼넷을 잘 골라내는 선수를 기용하고, 성실한 선수보다는 사생활이 문란해도 출루율이

높으면 출장기회를 더 줍니다. 사정없이 팔려나가고 퇴출되는 냉혹한 시장. 승리를

위해 희생되어야하는 선수들의 아픈 현실은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야구도 예상을 뒤엎는 반전과 9회 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에서의

역전 드라마에 묘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물론 야구 경기도 이기기 위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기기만을 위한 야구, 분석적이고 통계에 의한 냉철한 야구가

팬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지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돈만으로 결정되는 야구의 가치, 사람의 가치가 과연 옳은 것일까요? 그런

기준에서 여러분의 몸값은 얼마 정도가 될까요? 현대 프로스포츠의 천문학적인 몸값을

보면서 사람의 몸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뇌, 심장,

콩팥 등 우리 몸의 의학적인 가치는 수학적으로 계산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가치가 몸값의 대부분을 만들게 되므로 이러한 계산은 비현실적입니다.

대통령이든 노숙자든 의학적으로는 몸값이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의학적으로는 머니 볼 이론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의료의 산업화

논의가 활발한 요즘, 머니 볼 이론을 도입해서는 안 될 곳이 병원입니다. 예를 들어

사생활이 문란하고 태도가 불량한 의사, 수술 성적이 좋다면 병원이 경영 실적을

위해 스카웃해야 할까요? 수익 창출을 위해 성실하고 헌신적이지만 환자가 적은 의사를

해고시켜야 할까요?  

현재 의료는 IT의 발전으로 상당 부분 디지털화 되고 있습니다. 모든 의료 행위가

수학적으로 분석되고 통계적으로 정리되어 데이터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사람을 오감을 통해 치료하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이 의료입니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한다는 것이지요. 의료에 경영이

접목되어 병원이 수익 창출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지만 가장 중요한 환자의 치료라는

의료의 본연이 망각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의료의 영리적인 면과 복지 측면을 두고 우리 사회의 논쟁이 뜨겁습니다. 어느

한 쪽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야구가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끈한 감동을 주는 것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의료인에게는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두 가지 면이 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머니 볼]은 과연 수학적 통계를 이용한 냉철한 분석으로 기적의 드라마를

만든 감동의 드라마일까요? 빌리 빈 단장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엄청난 연봉을 거절하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남게 됩니다. 이것은 머니 볼 이론의 가장 결정적인 오류이고

수학적으로는 분석이 안되는 결론입니다. 영화의 이면에 감춰진 냉혹한 현실의 불편함을

우회해서 표현한 브래드 피트의 숨겨진 반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학

공식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것, 그러한 아날로그적인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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