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틸> 복싱, 그 치명적 유혹에 빠지다

[임재현의 ‘영화 속 의학이야기’]

폭력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이중성에 고민해 보신 적이 있나요? 최근 리비아의

독재자 가다피의 사살 소식을 접하면서, 용납될 수 있는 폭력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물론 가다피는 장기간 철권통치를 하면서 끔찍한 폭력을 수없이 행사 했습니다.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인간인 가다피를 사살하고

환호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 역시 폭력으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지만 그 역시 폭력의 한 자락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공권력이라는 약속을 정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권력은 폭력이라는 발톱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권력은

항상 엄중한 감시와 견제 속에 집행되어야 합니다. 한순간의 방심도 엉뚱한 피해자의

희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용납되는 또 한 가지의 폭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포츠입니다.

우리는 룰을 정해 그 안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갖게 합니다.

그 대표적인 스포츠가 권투이지요. 우리는 폭력을 터부시하는 교육을 받아왔지만

내면에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희열을 느끼는 본능이 동시에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투 같은 격투기의 피비린내 나는 경기를 보면서 열광하고, 본능적인 폭력성을

대리 해소하는 것입니다.

레슬링 같은 역사가 오랜 격투기에서부터 최근의 K1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격투기 스포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권투, 즉 복싱만큼 전 세계에 팬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하지요.

권투 영화에는 추억의 [로키]시리즈부터 [파이터 클럽],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의 할리우드 영화가 있고 고 김득구 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챔피언],

그리고 [주먹이 운다] 같은 우리나라 영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 특이한 소재의 권투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아닌 로봇이 복싱을

하는 영화 [리얼 스틸]입니다.

가까운

미래인 2020년이 영화의 무대입니다. 인간은 로봇들이 싸우는 복싱에 열광합니다.

찰리 캔튼(휴 잭맨)은 은퇴한 무명의 복서입니다. 그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괜찮은

로봇 복서를 구입, 경기를 해서 한몫을 건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번번이 그의 로봇은

싸움에 지고, 그는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혼한

아내가 죽으면서 남긴 아들까지 떠안게 됩니다. 그의 아들 맥스(다코다 고요) 역시

로봇에 관심을 가지는데, 어느 날 고철 더미에서 우연히 발견한 로봇(아톰)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맥스는 아톰을 훈련시켜 최고의 파이터로 만들려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사랑, 그리고 복싱에 대한 열정 등이 버무려진 영화 [리얼 스틸]입니다.

영화 [리얼 스틸]에서 왜 사람들이 직접 싸우지 않고, 로봇이 대리로 싸우는

복싱이 널리 퍼진 세상이 되었을까요? 아마도 복싱 선수들의 사망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인간이 직접 싸우지 못하도록 금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격투기 중에 복싱이

유독 사망 사고가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유달리 머리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복싱의 공격 형태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복부에 대한 공격도

하지만, 가장 빨리 승부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얼굴을 공격하여, 정신을 잃게 해 쓰러지게

하는 것이니까요.

머리에 충격을 받았을 때 쓰러지는 원인으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얼굴의

관자놀이 부분에 충격을 받게 되면, 인접한 내이(안쪽 귀)의 세반고리관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됩니다. 세반고리관은 우리 몸의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기능이 저하되면

몸을 가눌 수 없게 됩니다. 마치 운동회 게임 중에 코끼리 코를 만들어 제자리에서

도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열 바퀴 정도 돌고 나면 정신은 멀쩡한데도 다리가 제멋대로

풀려버리지요. 그래서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가격 당하면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쓰러진 상태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KO 당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뇌진탕이라고 하는 일시적인 뇌기능 저하입니다. 뇌에 충격을 받으면 뇌 신경계의

순간적인 혼란으로 쓰러질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잠깐이지만 의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대개는 이른 시간 내에 제 기능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영구적인

신체의 손상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고 김득구 선수나 고 최요삼 선수의

경우와 같은 사망 사고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 경우 역시 두 가지의 손상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뇌좌상(뇌내출혈)입니다.

우리의 뇌는 단단한 두개골 속에 보호되고 있는데 얄궂게도 우리의 뇌가 이 두개골에

부딪혀 손상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마치 케이크가 든 상자를 흔들면 그 속의 케이크가

상자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둘째는 뇌 경막하 혈종이라는 뇌출혈의 일종입니다. 우리의 뇌는 경막이라는 막으로

싸여 있고, 뇌와 경막의 사이는 뇌척수액이라는 물로 차있습니다. 뇌와 경막 사이를

연결하는 혈관이 많은데 특히 가로지르는 정맥들이 문제입니다. 정맥은 약해서 찢어지기

쉽고, 가벼운 충격에도 파열되어 출혈이 일어나지요. 이것이 뇌 경막하 출혈입니다.

이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게 되면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데,

이 경우 치명적입니다. 뇌가 부어올라 뇌압이 올라가면 뇌사상태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치명적인 복싱, 하지만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어 사람들을 빠져들게 합니다. 로마 시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의 경기에 열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복서들은 검투사가 아닙니다. 완벽한 보호 장구를

갖추고, 안전한 룰을 만들어 즐기는 스포츠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복싱은 다이어트에

가장 효과적인 좋은 운동이라고 하지요. 멋진 몸을 만들 수 있는 스포츠로, 우리의

내재된 본능을 건전하게 해소하는 레저로, 복싱이 사랑 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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