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

 ‘살아 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란 용어는 찰스 다윈이 만들어 냈다.

“진화의 역사가 오래면서, 자신과 가까운 친척은 모두 멸종해버린” 살아 있는 종을

일컫는다. 식물 중에서는 은행나무가 대표적 예다. 약 5600만 년 전 공룡시대에 등장한

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모든 친척 종들이 멸종하는 동안 어떻게 해서 혼자 생존할

수 있었을까. 식물학의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다.

이 나무의 비밀이 처음 밝혀진 것은 1896년이다. 한 일본인 식물학자가 밑씨 내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덕분이다. 수분된 꽃가루는 여름 내내 성장하더니 초가을이

되자 여러 개의 섬모가 달린 정자(인간 정자의 3배 크기다)로 변했다. 그러고는 난세포를

수정시키려고 헤엄쳐갔다. 이것은 놀라운 현상이었다. 운동성 정자는 이끼나 고사리

같은 씨 없는 식물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씨 있는 식물과 씨 없는 식물을

연결시키는 ‘잃어버린 고리’로 밝혀졌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는 사람이 키운 것이다. 야생 상태로 자라는

것은 1989년 비로소 발견됐다. 미국 하버드대 식물원의 피터 드레디치가 중국 저장성의

톈무(天目)산에서 167그루를 찾아냈다. 그는 과육에서 나는 악취의 기능도 밝혔다.

고기 썩는듯한 냄새 덕분에 타이완삵이나 흰코사향고양이 같은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배출된 씨앗은 발아율이 높다.

그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특이한 방식으로 번식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줄기(몸통)의

기저부가 큰 바위에 닿거나 침식으로 공기 중에 노출되면 몸통의 낮은 쪽 부위에서

특이한 가지뿌리가 아래쪽으로 자라난다. 이것은 흙을 파고 들어가면서 옆으로 뿌리를

뻗고 위로는 왕성하게 자라는 싹을 틔운다. 많은 수의 큰 나무가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몸통으로 살고 있었다.

수명이 엄청나게 긴 것도 이런 적응력 덕분으로 해석된다. 19세기 말 중국과 일본을

찾은 서구의 식물 탐사자들은 높이 30여m, 몸통 둘레 15m에 이르며 나이가 1000년,

심지어 2000년에 이르는 은행나무들이 있다고 보고했다. 공해에도 강해서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가로수로 인기가 높다. 그동안 빙하기와 온난기를 거치는 대규모 기후

변동에도 살아남았으니 다가올 온난화에도 끄떡없다. 진화를 멈춘 식물이 생태적

불멸성을 획득했다고 할까. 앞으로 거리에서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은행나무를

만나면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는 공룡 시대의 ‘살아 있는 화석’과 함께 살고

있다고.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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