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보다 빠른 입자 ‘소동’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리 이동하는 것을 관측했다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지난달 발표 이후 이를 설명하겠다는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측정의 정확성

자체에 의심을 품는 것이 과학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과학 논문의 내용을

미리 발표하는 사이트(arxiv.org)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만일 사실일 경우’ 최초로

이론적 설명을 제시했다는 공로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이곳에 실리는 논문의 대다수가 이런

유형이라고 지적하고 그 중 일부를 소개했다. 먼저 제시된 것은 4차원 시공간을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지름길을 통해 이동했다는 식의 이론들이다. 그런가 하면 중성미자는

공간 속을 진행할 때보다 지구를 통과할 때 속도가 더 빠르다는 설명도 있다. 빛(광자)과

달리 암흑물질과의 상호작용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암흑물질이란

우주 질량의 23%를 구성하면서도 아직 관측되지 않고 있는 물질을 말한다. 심지어

중성미자의 속도는 측정 시각과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논문까지 나왔다.

하지만 1979년 노벨상 수상자인 셸던 글래쇼 보스턴대 교수는 이 사이트에 반박

논문을 올렸다. 설사 중성미자가 일시적으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해도 일종의

충격파 효과 때문에 입자와 반입자 쌍을 방출하고 곧바로 에너지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CERN에서 발표한 정도의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 관측 결과는 지난해 3월 스스로 발표한 내용과도 이론적으로 상충된다.

중성미자는 움직이는 동안 최소한 2종류의 상태로 계속 바뀐다는 사실이 지난해 확인됐는데

이번 관측은 이와 맞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중성미자의 속도는 이미 정확히 알려져

있다. 1987년 독거미 성운 가장자리에서 관측된 초신성을 보자. 여기서 방출된 중성미자는

빛과의 속도 차이가 4억5000만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까지 15만 년을 달려와

중성미자가 광자보다 3시간 빨리 도착했다. 그나마 이 차이는 출발 지점이 달랐던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성미자는 초신성 중심부에서 곧바로, 광자는 중심부의

충격파가 초신성 표면에 도달한 이후에 각각 방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  이에

비해 CERN이 측정한 것은 빛의 속도보다 4만분의 1 정도 빨랐다. 앞서의 초신성 중성미자가

이 같은 속도였다면 실제 관측된 것보다 몇 년 일찍 지구에 도착했어야 한다.

24년 전 이를 측정했던 미국 애리조나대학의 로런스 크라우스 교수는 지난 4일

LA타임스 기고를 통해 “CERN의 측정 결과는 논문으로 제출돼 동료 과학자들의 엄정한

심사를 받은 후에 발표됐어야 했다”면서 “과학적 발견을 논문도 없이 미디어에

먼저 발표하는 행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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