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약 개발, 실패와 인내가 바탕”

21세기 파이오니어① - 일양약품 김동연 사장

항궤양제 놀텍,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라도티닙… 잇단 ‘수출신약’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양약품의 김동연(61) 사장은 1976년 초 대학을 졸업할 무렵 두 갈래

길 앞에서 고민했었다.

롯데그룹과 일양약품 두 곳에서 합격통지서가 왔기 때문이다. 롯데는 재일동포

큰 부자가  설립한 ‘돈 많은 기업’이었고, 일양은 성장성이 큰 유망기업이었다.

강원도 삼척에서 올라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김 사장은 앞길이 험난할 수

있는 제약회사를 선택했다. 대학 시절 속 쓰릴 때마다 복용한 위장약 ‘노루모’의

신통함이 선택에 한몫했다. 노루모의 광고 카피 ‘상쾌한 아침, 상쾌한 하루!’처럼

앞날이 상쾌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길은 멀고 험했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거친 산길이었다.

그는 실패와 굴곡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서 자신의 진로를 정해준 ‘노루모’를

수출신약 ‘놀텍’으로 키워나갔다. 일양(一洋)이란 회사 이름은  ‘하나에서

출발해서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의 삶은 회사 이름과 너무나 닮았다.

김 사장은 제약회사 사장치고는 숫기가 없는 편이다. 줄곧 연구에 매달린 과학자의

면모가 표정에 배어있다. 그는 지금도 연구소장의 직함을 함께 갖고 있다. 수시로

서울 도곡동 본사와 경기 용인시의 중앙연구소를 오가며 연구를 지휘한다.

김 사장으로 대표되는 일양의 신약개발사는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면서 한국 신약개발 연구조합이 출범했던 1987년이다. 조합은

제약회사 별로 ‘전공과목’을 할당했다. 일양은 영진제약, 한미약품 등과 함께 위궤양

신약을 개발키로 했다. 노루모 덕이었다.

당시는 변변한 공장도 없었다. 설비에서 안전수칙까지 하나하나 만들어가야했다.

불이 나는 바람에 몇 개월에 걸친 수고가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1149번째 물질에서 희망의 빛을 봤고, 마침내 놀텍이 탄생했다. 그때까지 희생된

실험동물이 1만 5000마리를 넘었다. 위령제를 지냈다. 밤에 혼자서 연구에 매달릴

 때 그 동물들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순간이 적지 않았다.

“당시 시메티딘, 라니티딘 등의 약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지요. 약효는 좋았지만

독성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요. 이때 아스트라제네카가 만든 오메프라졸이 획기적

신약으로 떠올랐어요. 우리는 이를 능가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해냈다’는 확신이 들어 아스트라제네카에게 우리 제품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찬사를 보낸다’는 반응이 왔습니다. 가슴 벅차올랐습니다.”

놀텍은 미국과 독일 등에서 1, 2차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3차 임상은

미국의 애보트와 일본의 다케다가 합작한 TAP와 손을 잡고 미국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케다가 애보트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발을 뺐다. 자사 제품의

업그레이드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이다. 놀텍의 시장 진출 일정은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서 건배를 하면서 성공을 기원했는데…. 주주들의

항의가 폭주했지요. 그래도 성급하게 3상을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을 지켰더니

오히려 더 좋은 조건으로 글로벌회사와 계약을 맺을 길이 생겼습니다. 조만간 미국

3차 임상시험을 다시 전개할 계획입니다.”

김 사장의 연구 우선주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라도티닙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 약은 국내 첫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꼽힌다. 이미

1, 2차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3차 임상시험은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20여 개 대형병원에서 240명을 대상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시장은 노바티스의 글리벡이 국내에서 1000억원 가까운

연 매출을 올리고 있다. 라도티닙은 글리벡보다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판허가도 곧 나올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글리벡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는

올 연말 이내에, 모든 환자가 내년 연말 이내에 라도티닙의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라도티닙은 값이 저렴하다는 점에서도 글리벡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이 분야

시장은 아시아권에서만 3조~4조원인데 이중 상당 부분을 라도티닙이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요한 관문인 중국의 보건당국은 1, 2차 임상시험 없이 곧바로

3차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국의 백혈병 환자를 저가에 치유하기

위한 특례 조치다.

김 사장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양약품은 지난 4월 충북 음성군에 연간

6000만 도스(Dos, 1회 접종 분량)를 생산할 수 있는 독감치료 백신 공장을 완공했다.

국내 최대 규모다. 여기서 생산될 예정인 백신은 현재 널리 사용되는 타미플루의

내성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평가된다. 타미플루는 특정 효소의 작용을 방해해서 독감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지만  일양의 백신은 바이러스 DNA의 복제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약효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으니 슈퍼 항바이러스제로 꼽힐 만하다.  

 “신약개발은 기다림의 미학이 적용되는 분야입니다. 만일 일양약품의 설립자

정형식 명예회장과 정도언 회장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지 않았다면, 왜 제품이

빨리 나오지 않느냐고 채근했다면 ‘신약 제약사 일양’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신약개발은 실패를 많이 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지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실패에 주눅

들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매진해준 연구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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