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설사병’ 호들갑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도 없는 남의 나라 설사병에 왜 한국 언론이 호들갑일까?

유럽에서 유행하는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얘기다. 일부 언론은 ‘변종 슈퍼

박테리아’ 운운하며 불안감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독자나 시청자는  “엄청

무서운 병이구나. 혹시라도 이 병이 한국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라고 걱정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 태도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어떻게든 불안감을 조성해

독자의 눈길을 끌려는 상업주의에 불과하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슈퍼 박테리아’라는 표현은 과장이다. 이는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지니는

박테리아에게 붙이는 별명이다. 하지만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은 원래 항생제를

써서는 안되는 병이다.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내성이 없는 균일 경우

항생제에 죽으면서 더 많은 독소를 내뿜는다. 내성이 있는 경우엔 더 해롭다.  항생제가

장내의 다른 균들을 대량 살상해 내성 균주가 홀로 번창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평소 장내에는 수백 종의 대장균 수천억 마리가 살고 있어서 독성 대장균의 활동을

억제해주고 있다. 그럼 치료법은? 설사에 따른 탈수 증세를 정맥주사로 보충해주는

것이다. 증상이 심할 경우 혈액 속의 혈장을 교환해서 독소를 희석시킨다. 이런 병에

‘항생제 내성’ ’슈퍼 박테리아’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둘째, 애당초 국내에 들어올 위험성이 없는 강 건너 불이다. 이 병은 감염 원인은

가축의 변에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이런 물로 재배한 채소를 먹는 것이다. 상추,

오이, 토마토, 최근엔 새싹채소가 의심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국은 유럽 채소를 수입하는 나라가 아니다. 또한 유럽 여행을 다녀온 감염자가

국내에 들어온다 해도 유행을 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람간에는 거의 전염이

되지 않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매체가 ‘장출혈성 대장균 2004년 한국서

발병’ 같은 제목의 기사를 중요하게 보도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니 독자들이여 걱정하시라’라는 메시지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만일 유럽과 동일한 균주의 환자가 한국에서 한 명 발생했었으나 주위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고 완치됐다면 오히려 안심해야 할 근거가 아닐까.   

물론, 이번 유럽 대장균이 독성이 강한 변종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한 달여간

2천3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했다. 1%라는 사망률은 통상적인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의 3배 남짓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외신에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한국 언론이 경마식 보도를 일삼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국민의 건강을 걱정해서

하는 보도라면 이보다는 해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에서 수 천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뎅기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옳은 태도가 아닐까.

마침 문제의 대장균이 가축의 장에 주로 사는 장출혈성 박테리아가 아니라 인간의

장에 사는 장응집성 박테리아로 보인다는 독일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오늘 우리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하고 나섰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전염 사례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은 해당 박테리아가 어느 쪽 계열이든 전염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게다가 독일 밖의 나라에서 발견된 환자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독일에 머물렀던

사람들이었다. 신규 환자의 발생 숫자 역시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WHO 유럽지부의

통계에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남의 나라 설사병으로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선정적 보도를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을까.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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