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의 무한책임

[칼럼]김대성 미디어콘텐츠본부장

담배가 몸에 아주 좋지 않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뿐

아니라 주위에서 간접흡연을 하는 사람도 직접 피우는 사람의 70%만큼은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담배에 대한 해악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거나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으려는 공공기관의 노력도 눈에 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버스정류장과

근린공원 등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을 물리기로 했다. 가로변 버스정류장

5715곳, 근린공원 1024곳, 학교주변 반경 50m 이내 학교절대정화구역 등이 금연구역이

된다.

서울시는 각 자치구에 금연구역 범위와 과태료 등의 내용이 담긴 ‘간접흡연 금지

조례’ 표준안을 보내고 올해 상반기 안에 조례를 제정하도록 유도했다. 금연빌딩과

금연아파트 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주변에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들은 직접흡연 뿐만 아니라 간접흡연도 강력히 규제하려는 움직임이다.

15일 서울고법 민사9부의 판결은 담배에 대한 해악을 알리는 경고신호가 곳곳에서

나오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법원은 폐암 환자들이 제기한 ‘담배 소송’에서 국가와

KT&G측이 잘못은 있지만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는 이율배반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앞으로 버스정류장이나 근린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를 내야하는 일반인들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이다. 옆 사람에게 내 담배연기를 맡게 하면 과태료를 무는데

담배를 만들어 파는 KT&G나 그 경영과 인사권을 사실상 관할하는 국가는 흡연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안 져도 된다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중앙정부의 한 기관이 담배를 만들어 전국에

공급하고 있다. 반대로 하위 조직인 지방자치단체들은 담배의 해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발상을 짜내는 우스꽝스런 동행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처음 흡연과 폐암이 서로 인과관계에 있음을 인정했다.

1심의 결론을 뒤집은 것으로 흡연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KT&G가 담배에 결함이 있거나 고의로 정보를 감추고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등 위법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첨가제 투여나 니코틴 함량 조작

등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물러났다.

결국 담배를 제조하는 KT&G의 잘못은 인정되나 KT&G가 구태여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읽힌다. 국내에서는 폐암 환자와 가족이 KT&G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지만 미국에서는 미연방대법원이 담배회사에게

8000만 달러(약 1000억원)의 물도록 한 일이 2009년에 있었다.

미국 대법원은 담배회사들이 오래전부터 흡연이 대단히 위험하며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중에게 태연하게 거짓말 해왔다는 점을 받아들여 ‘철퇴’를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 판결은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KT&G가 고의로

정보를 감추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볼 수 없고 곧바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다.

KT&G는 이번 담배소송에 임하면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첨가물이

우리 담배에 들어가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발짝을 양보하더라도 미국

담배회사들만 전부터 담배의 해악성을 잘 알고,  KT&G는 순진하게도 전혀

모르고 담배제조를 계속하는 것 같지는 않다.

청소년기에 호기심에 배운 담배가 금세 10년, 20년, 30년 흡연에 이르고 말았다는

고백은 주변에 넘친다. 술도 술이지만 담배야말로 국민건강, 특히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청소년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중앙정부가 가공 담배의 독점적인 생산자이며 판매자이다.

12년을 끌어 온 담배소송은 흡연자의 패배로 결말났다. 만약 정부가 눈앞의 담배판매

수익에 눈이 어두워 성심으로 떠받들어야 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보를 감추고

담배 제조와 공급을 계속하고 있다면?

상상하기도 두렵다. 이번 소송의 결말이 나기도 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원고

가운데 5명의 흡연기간이 기억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20살이

되기 전부터 담배를 하루 한 갑 반 이상 피웠다. 흡연기간 37년, 37년, 41년, 41년,

42년.

김대성 기자 dskim@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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