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 거부하는 환자

신현호의 의료와 법

“(저의 수술 중에) 수혈을 전적으로 금해 주실 것을 본 각서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일본사람 아사꼬(63, 여)는 1년 전 간장 혈관에 악성 종양이 생긴 ‘악성간장혈관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여서 종교적 신념에 따르기 위해 수혈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던 끝에 도쿄대학 의과학연구소 부속병원에서 무수혈수술을 해준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아사꼬는 수술에 앞서 병원 측에 이른 바 ‘수혈 거부각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병원은 “수혈 이외에 목숨을 구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 되면 수혈 한다”는

상대적 무수혈 치료방침을 정하고 따로 수혈할 피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병원의

방침을 아사꼬에게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날, 간 종양 제거 과정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출혈이 일어났고 환자가 쇼크에 이르렀습니다. 담당의사는 아사코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응급수혈을 했습니다. 아사꼬는 회복한 후에야 수혈사실을 알았습니다.

병원 측을 상대로 신앙의 자유 및 자기결정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성서에서 창조주가 피의 유일한 용도로 죄를 용서하는

‘속죄’로 한정하며 ‘피를 먹지 말라’ 혹은 ‘피를 멀리 하라’고 가르친다”는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쿄지법은 1심에서 “절대적 무수혈 합의는 사회의 일반 도덕이나 공공질서 위반이므로

무효”라며 아사코의 청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급심은 “생명을 걸고라도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무수혈을 요구했다면 위법이 아니다”면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판단력이 있는데도 사전에 병원의 상대적 무수혈 치료방침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

환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병원 측은 아사꼬에게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취지였습니다.

도쿄대학 부속 병원 측은 “병원은 환자의 생명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고, 수혈이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긴급 사무관리로서 위법성이 없어진다”고 주장했지만

일본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일본 법원과 생각이 같습니다. 법리적으로도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가진 성인이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어떠한 경우에도 수혈을 거부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보호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본 병원 측은 수술 전에 미리 “수혈 이외에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으면 응급수혈을 한다는 내부지침이 있다”는 것을 미리 설명하고, 수술

여부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줬어야 합니다. 이 같은 논리에 쉽게 수긍하지

못할 분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분은 어떠십니까. 그러나 기본전제는 분명합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인격권의 중요한 부분으로 그의 신념이 다른 사람의 권리나

공공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한편 병원 측에 ‘신앙요법’이라는 비과학적 치료법을 요구하는 행위나 판단능력

없는 미성년자나 심신상실자를 보호하는 사람이 병원에 무수혈 치료를 강요한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할 헌법적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 문제와 전혀 다른 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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