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아들에게 실시한 끔찍한 임상시험

서상수의 법창&의창

어린이 에이즈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 뉴욕 ‘인카네이션 어린이센터’는

1989~ 2002년 생후 3개월~5세 된 어린이 89명을 대상으로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개발 중인 에이즈 치료제의 강제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임상시험은 컬럼비아대학병원인 프레즈비테리언병원(Presbyterian Medical Center)이

주관했다.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 및 감염질환 연구소와 국립아동보건연구소가

후원했다.

원래 임상시험은 시험대상자의 동의나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시험대상자들은 대부분 흑인과 히스패닉계 고아들이었다. 뉴욕시 아동보호청의 승인만으로

적법성을 띠고 진행되었다.

이 임상시험에서는 어린이에게 부작용이 매우 심한 것으로 알려진 아지도티미딘(AZD)

등 에이즈치료제와 단백질분해효소억제제 등이 투약됐다. 치명적인 7개 약품을 혼합한

칵테일 약물이나 정상치 2배의 백신이 투약되었다. 약을 삼키지 않는 어린이에겐

위벽을 뚫어 튜브로 약을 강제 투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당수 시험대상

어린이들이 사망했다.

이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대 윤리학 분야 연구원 출신인 해리엇 워싱턴의 책

‘의료 인종차별 : 식민 시대부터 현재까지 미국 흑인들에게 자행됐던 의료실험의

어두운 역사(Medical Apartheid : The Dark History of Medical Experimentation

on Black Americans From Colonial Times to the Present)’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런 사실은 2004년에 이르러 주요 언론사들이 잇따라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보건단체들은

“어린이들이 마치 실험용 동물처럼 취급됐다”며 미 식품의약청(FDA)이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당시 문제가 된 제약사의 한 대변인은 “우리

회사는 약품 연구 또는 자금 지원에 국한해 참여했고 환자들과 직접 관계는 전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부분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학기술

진보에 따라 의학도 발전했다고 막연하게 믿는 우리는 생소하면서 잔혹한 이 사건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흑인 매독환자를 방치해 사망케 한 뒤 시신을 연구용으로

쓴 일이 적지 않다. 여성 노예에게 마취도 하지 않고 실험을 해 산부인과 치료법을

발전시킨 의사도 있었다. 생체실험이라고 불러도 좋을 임상시험의 사례는 많이 있었다.

물론 오늘날 실시되는 인체에 대한 임상시험의 거의 전부는 인체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고 있다.  또 여러 나라에서는 법률로

임상시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비윤리적 문제를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임상시험에 관하여 우리 나라의 법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약사법에 따르면 임상시험을

하려는 사람은 시험계획서를 작성하고 식약청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식약청장은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성분을 이용한 임상시험을 제한할 수 있다. 임상시험을 하려는

사람은 시험 대상자에게 임상시험의 내용, 부작용, 부작용에 대한 보상내용과 절차

등을 설명하고 대상자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우리 나라의 법은 임상시험에

관해 적절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되물어본다. 미국 뉴욕주에는 이러한 제도나 법적 규제가 없어서 끔찍한

임상시험이 벌어졌던 것일까? 필자가 알기로 미국에서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가 있고 이 기관이 심사, 승인, 감시를 하고 있다. 그러니 문제는 법과

제도가 아니다.

에이즈 치료제 등 신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했을 때 생길 막대한 이익과 명예가

제약회사를, 의료기관을, 뉴욕시 아동보호청을, 그리고 사람들을 눈멀게 했던 것이다.

만약 앞서의 끔찍한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들이 부모도 없이 중대한 병에

걸린 어린이들의 고통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아파하고 희망하는 존재임을 좀

더 인식하며 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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