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의사되기

문학의학학회 마종기 초대회장

“낯선 도시에서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절망하던 고단한 하루의 샘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해가 늦게 뜨는 겨울 아침 강의시간, 창밖으로 들리던 눈 녹는 소리나

아침 햇살에서도 받지 못하던 위로를 선생님의 시로부터 받았습니다”

가요계의 음유시인 루시드폴은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 시인(71)을 자기 인생에서

만난 가장 거대한 ‘시인’이자 ‘음악인’이라고 불렀다. 마종기 시인 또한 이국에서의

절망과 외로움을 잘 알기에 루시드폴에게 진솔한 위로를 전했다. 편지로 만나게 된

루시드폴과 마종기 시인의 대화는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 지식하우스)이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만약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수련받고 의사가 되었다면 아마도

문인의 길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시를 안 쓰고는

살기 힘들어서, 내가 숨 쉬고 살기 위해서 시를 썼습니다.”

의사도 시를 쓰고 문학 활동을 겸할 수 있다는 길을 연 마종기 시인은 우리나라

문학의학학회지 창간호에 이런 소회를 밝혔다. 의사와 문인의 길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주변의 충고가 잇따랐지만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두 가지 길을 모두 성공적으로

함께 걸었던 이유를 밝힌 것이다.

마종기 시인은 1966년 미국으로 건너 갔다. 낯선 땅에서 수련의를 거치고 피부색을

구별하는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아동병원 방사선과장을

지냈고 성공적인 미국 의사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고국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한국과의 끈을 끊지 않으려고 일 년에 최소 8편의 시를 고국에

발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평생 한해도 거르지 않고 실천했다.

2002년 의사의 자리에서 물러난 마종기 시인은 같은 해 연세대 의대에서 개설한

‘의학과 문학’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매년 가을학기에 고국을

찾았다. 그는 괜찮은 의사가 되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종기

시인은 “의대생들이 시나 소설을 쓰고, 음악을 하면서 자기의 감성을 다듬으면 완성된

의사로서 환자라는 ‘타인’을 대할 때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과 의학의 만남을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우리나라

문학의학학회 창립위원장을 맡아 앞장 선 이유다. 그 결실이 지난 2일 문학의학학회

창립대회 및 제1회 학술대회로 영글었다. 이 자리에서 마종기 시인은 초대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난 세월 우리나라의 의학은 크게 발전했지만 의사들의 인성도 같이 발전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은 인성이 갖춰진 괜찮은 의사를 길러 내는데

꼭 필요합니다. 미국은 1980년대초 문학학회가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는 과학 공부만

강조했고 의사의 손에 문학을 쥐어주는 다른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가 미국 땅에서 우리나라 문학의학학회 설립에 앞장서기까지는 연세대 손명세

보건대학원장의 힘이 컸다. 손명세 교수는 은퇴한 마종기시인에게 한국에서 의학과

문학 강의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써클활동 수준이 아니라 의대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인성교육에 관심을 두고 문학강의를 처음 도입한 것. 이후로 손명세 교수, 국립암센터

서홍관 박사, 아주대 이병훈 교수 등이 문학의학학회 창립을 꾸준히 준비했고 올해

봄부터 모든 구체화했다.

마종기 시인은 “당연한 말이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면서

“스스로 ‘난 쓰레기다’, ‘난 남보다 못하다’ 라고 하면 불행이 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의 시 ‘바람의 말’의 일부를 말없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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