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월 11000원 더 내면 병원비 걱정 ‘끝’?

중증 환자에겐 이념 아닌 심각한 생존문제

간암과 죽음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 모(45)씨는 직장생활도 죽을 힘을 다해

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병 치료에 전념해야 하지만 아내와 두 딸의 생활비,

무엇보다 치료비용을 부담키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김 씨는 간암에 효과적인 유일한 표적치료제 넥사바를 먹고 있다. 그러나 넥사바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환자들은 한 달 약값만 300만원 이상 고스란히 부담한다.

해마다 암 환자는 늘고 있으나 넥사바를 비롯해 중증질환 치료제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단 김진희 연구원이 2005년도 한국중앙 암등록 자료와

건강보험 청구자료, 사망원인 통계 등을 이용해 추정한 결과 2005년 우리나라의 암

관련 경제적 부담은 모두 14조1000억원이었다. 2002년의 11조4000억원보다 23.6%

증가했다. 이는 2005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7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건강보험료를 일인당 월 1만1000원씩 더 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를 크게

늘리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지난 달 중순 출범한 뒤  많은 사람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뛰고 있다.

시민회의 안기종 공동대표(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백혈병 같이 중증질환을

가진 환자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건강보험은 지금보다 보험료를 더 받는 대신

보험적용 폭을 늘리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다”며 “그들에겐 이 문제가 정치

논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시민회의는 공식홈페이지를 오픈하고 다음 달 15일 이전까지 지역별로 시민회의를

만들어 2년 동안 100만명의 서명을 받아낼 목표를 세웠다. 시민회의는 ‘1만1000원의

기적만들기’ 캠페인을 통해 일인당 건강보험료를 40%만 더 내면 어떤 중병에 걸려

입원해도 병원비의 90% 이상을 국민건강보험이 해결하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병에 걸려도 전체 병원비가 연간 100만원을 절대 넘지 않게 한다는 환상적인 주장이다.

월 1만1000원은 현행 건강보험료를 40% 인상한다고 할 때 1인당 월평균 추가부담

금액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월 1만1000원을 더 내면 6조2000억원이 새로 생기고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더 낸 만큼 기업과 정부의 지원이 각각 3조6000억원, 2조7000억원이

자동 증액돼 총 12조4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원이 마련된다는 계산이다.

시민회의가 출범한 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새로운 정치 쟁점화 하고 있다.

민주당과 양대 진보 정당은 이 운동을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라는 새로운

복지정치 이슈로 내세우고 관련 법안을 만들자는 움직임을 보인다. 반면 보수진영과

대한의사협회 등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지만 반대하는 기색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이 운동이 ‘포퓰리즘’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한 대학병원 S교수는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 말은 좋지만 현실성이 없는 사회주의 정책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 의료 전문지가 입수한 대한의사협회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현실성이

없고 환상적인 문구로 인한 포퓰리즘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그 이유로 △비현실적인 수가체계에 따른 비용 증가 △보험료

인상에 따른 기업과 정부의 추가적 재정 부담 △단일보험자 체제 강화로 인한 문제

발생 등을 제시했다.

진보 시민단체에서도 의견이 양분되는 양상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시민회의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재원 확보 방법에는 다른 입장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는

“보장성강화라는 의견에는 동감이지만 보험료를 인상한다고 보장성이 바로 확대될지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건강보험재정에서 약값, 과잉 검사 및 진료비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9년 건강보험에서

약값으로 나간 돈은 7조2000억원으로 약 30%다. 불필요한 수술, CT, MRI, 초음파

검사로 나가는 비용도 무시 못한다. 이런 근본적인 것부터 바로잡아야 건강보험료를

올렸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 7월 23일 열린 진보포럼 ‘맑스2010’에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국민에게 건강보험료를 40% 인상하면 기업과 정부의 부담이 비례해 늘어난다고

확언할 수 없다”며 “국민이 돈을 더 내기 전에 건강보험법의 국고지원을 40%로

확대하자는 법개정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건강보험재정은 개인:회사:정부의

비율이 5:5:2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고 평균인 23.1%에도 한참 못 미친다. 기업도 마찬가지. OECD 평균 기업의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5.4%이고 노동자의 경우는 3.1%다. 그러나 한국은 기업이 2.5%,

노동자가 3.3%다. 노동자가 오히려 더 많이 낸다.

개인과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면 영세민과 중소기업의 재정난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안기종 공동대표는 “선진국은 저소득층의 보험료는 면제해

주거나 무이자 대출 프로그램이 있다”며 “절대 빈곤층과 상대 빈곤층에게 보험료

면제 및 보험료 대출 프로그램을, 중소영세사업장에는 국민건강보험료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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