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지 못할 줄임말 너무 활개친다

“생파에 생선 사오세요”

“부장님, 오늘 저녁 생파(생일파티) 오실 때 생선(생일선물)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부장님, 오늘 저녁 생선 보이지 않으면 저 안습(안구에 습기찬다-눈물난다)입니다”

점심식사를 하던 김 부장은 직원들이 자신에게 말을 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오늘 저녁 부원 회식이 있는데, 난데없이 생선은 왜 자꾸 들고

오라는 말인지. 자기만 빼고는 모두 알고 있는 말인 것 같아 묻기도 어색하다.

무엇이든 거꾸로 말하는 거꾸리는 더운 여름에도 땀을 흘리며 춥다고 말합니다.

무엇이든 궁금해하며 물어보는 궁금이는 이런 거꾸리를 보고 어떤 말을 했을지

쓰시오.

한 초등학교의 시험문제다. 이에 대한 한 학생의 황당한 답변은 ‘즐’ 이었다.

‘즐’은 ‘즐겁게 게임하세요’를 줄인 ‘즐겜’에서 또다시 ‘즐’로 줄어든 말이다.

즐겁게라는 의미 외에 상대의 말을 무시하거나 듣기 싫다는 정반대 뜻도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헛소리 마” 정도 될까.

‘지대’라는 단어의 뜻을 50대는 ‘얼굴이 땅처럼 넓은 사람’ ‘계집애들의

대장’, ‘힘들 때 기대라’ 등으로 추측했다.(KBS 2TV ‘상상플러스’ 코너 중)

그러나 이는 ‘제대로’라는 말의 변형 줄임말이다. 어원과는 다른 엄청난, 좋은,

훌륭한, 무척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온라인에서 활개 치는 터무니없는 줄임말 사용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전달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말의 정체성이 많이 오염되고

있다. 이러다가 국어가 제 모습을 잃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말 할 때 줄임말을 쓰는 것은 말의 경제성을 따지는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일 모레 보자”를 “낼 모레 보자”로, “제일 좋아”를 “젤

좋아”로 줄여서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베프(베스트 프렌드), 겨털(겨드랑이털),

자소서(자기소개서) 같은 줄임말은 이미 오프라인에서도 많이 쓴다. 그러나 줄임말을

썼을 때 사람들이 무슨 소린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고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면 문제다.

국립국어원 정희창 연구관은 “현재 온라인에서 10대 누리꾼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줄임말은 특정 환경에서 특정 사용자만 쓰면 그나마 괜찮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 말들이 일상생활에까지 번지면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줄임말이 이렇게 활개를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 등 통신의

발달이다. 줄임말 유행이 우리나라만이 아닌 미국 영국 중국 등에서도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인 셈. 지난 2002년 유행을 누린 미국 가수 에이브릴 라빈은 ‘Sk8er Boi(스케이터

보이)’라는 표기로 기성세대는 얼른 알아채기 힘든 줄임말을 사용했다. 원래대로라면

‘Skater Boy’가 맞다.

정희창 연구관은 “인터넷, 휴대전화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용량 제한을

극복하려고 핵심내용만 전달하면서 이상한 줄임말이 많이 생겨났다”며 “최근에는

자연스런 줄임말이 아니라 일부러 만들어 쓰는 줄임말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 방송 등 미디어도 줄임말 사용을 부추겼다. 인터넷 기사는 줄임말을 아예

제목으로 쓰기 일수다. ‘강부자(강남에 사는 땅 부자)’,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등이 시사용어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우결(우리

결혼했어요)’, ‘무도(무한도전)’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것도

보통이다.

온라인 줄임말 홍수를 주도하는 것은 청소년 세대다. 이 시기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시기라 기성세대의 가치 공유를 거부한다. 이대목동병원 정신과 김의정

교수는 “청소년은  어른 세대와 차별되는 고유 용어를 만들어보려는 심리가

강하고 끼리끼리 통하는 언어를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해 줄임말을 의도적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청소년들이 만든 약간 어눌하기까지 한 줄임말 언어가 유행으로 번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만 모르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며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심리까지 가세하면서 터무니없는 줄임말도 사회 전반으로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성세대는 국어 말하기 듣기 쓰기가 어떤 틀에 완성된 상태이지만

청소년이 문법이나 언어규칙을 무시하고 인터넷을 통해 얻은 잘못된 언어를 계속

구사하면 혼란이 생기고 학습발달도 제대로 되기 어렵다는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박양명 기자 toan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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