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5개월, 3종류 독자를 접하고…

퍼즐 맞추기같은 독자의 눈높이

독자 1 :

“기자님께서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기사는 제 연구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대충 쓴 듯한 느낌이었는데 기자님이 쓰신 글을 읽으니 연구결과에 가장 근접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선배와 데스크에게 말 그대로 하나하나 지적을 받던 수습 2개월 째의 지난 2월.

낯선 이름의 발신자가 보내 온 이 메일에 난 정말 가슴이 벅차올랐다. 몸과 마음이

함께 힘들고 머릿속에서는 내가 과연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이 길은 내가 제대로

선택한 길일까라는 의문이 솟구쳤다가 사라지곤 하던 시기였다.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부모나 교사가 억압적이어서 보다는 말 더듬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외신을 좀 충실히 썼을 뿐인데 마침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그 연구진에

포함돼 있던 한국인 박사가 보내온 메일이었다. 며칠을 기분이 상기되어 보냈다.

첫 번째 독자와는 그 메일이 인연이 되어 직접 인터뷰도 했다. 말더듬 유전자를

규명한 연구팀에 한국인 연구자가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른 독자들도 적지

않게 관심을 가졌다.  

독자 2:

“스무 살이 넘은 우리 아들이 이갈이가 아주 심한데 기사에 나온 이갈이 교정

기계 좀 구할 길이 없을까요?” 전화기 저편의 아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끊임없이 그동안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사뭇 하소연이었다.

군산의 한 공무원인 이 분은 “여기저기 병원도 다녀 봤고, 권투 선수같은 마우스피스를

끼고 자도록 하기도 하면서 별 치료법 다 써보았는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갈이를

치료하는 전기자극 치료기가 외국에 나왔다는 내가 전한 기사를 보고 전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기자극 치료기가 막 등장했다는 기사여서 나 자신도 이 외신 기사를

발굴한 웹사이트 외에는 특별한 연락처도, 취재원도 없었다. 더구나 그 기기를 구해드릴

수는 없었다. 내가 발명한 것이라면 공짜로라도 드렸으련만…

독자 3:

“기자님이 쓰신 글이 오해의 여지가 많아 글을 보냅니다. 기사대로라면 잘못하면

우울증 환자들이나 우울증 약물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할 대상들이 괜한 오해와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음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중했지만 분명 “기사 똑바로 쓰라”는 따끔한 충고의 항의 이메일이었다. 경북의

한 정신과 의사는 내 기사 속에 단정적으로 표현된 부분을 지적하면서 내가 쓴 기사가

어떤 이에게는 희망도 줄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절망과 좌절도, 또는 불필요한

불안과 불신까지 일으킬 수 있음을 가르쳐줬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날 기사작성

마감에 쫓기고는 있었지만 별 일 없겠지 하면서 토씨하나 단정적으로 쓴 게 정신과

의사에게 제대로 걸린 것이다.

첫 번째 독자는 나에게 즐거움을, 두 번째 독자는 책임감을, 그리고 세 번째 독자는

나에게 기자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신중한 자세를 일깨웠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 만큼 경험이 충분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에게 확실한건 앞서 소개한 독자들의 칭찬

또는 지적이나 채찍질이 나를 기자다운 기자로 성장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고 기형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말을 했다. 자기를 떠받치고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힘이 역설적으로 질투심에서 온다는 뜻일 게다. 나도 기형도시인을

베낀다면, 나를 기자로서 서 있게 하는 힘은 독자에게서 나온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독자는 나의 힘?’

물론 언제나 어디서나 독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고민하는 전제조건이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나의 기자로서의 하루하루가 독자들 속에서 쌓여간다.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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