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아이를 돌보는 노인들 “대화가 필요해”

손주 육아 맡는 노인 늘어, 스트레스 원인되기도

“맞벌이 하는 아들 내외의 수고를 덜어 주고 싶어 덜컥 맡아 주기로 했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육아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는데 걱정이 되네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사는 김대숙(58) 씨는 5월이 기다려진다. 첫 손주가 출산

예정된 달이다. 하지만 걱정도 많다.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며느리

대신 아이를 맡아 키우기로 했지만 아기를 직접 길러본 지 30년이 지났다. 가물가물하다.

육아를 맡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면서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가구 중 맞벌이 가구는 32%다.

이 비율은 해마다 늘고 있다. 때문에 아기가 생기면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가 된다.

맞벌이 부부가 찾는 가장 좋은 대안은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이다. 보육시설에

맡겨도 되지만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제 자식처럼 키워줄 것인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여성가족부(현 여성부)가 2005년 말 전국 2,925가구를 대상으로 가족실태 조사를

한 결과 맞벌이 부부의 경우 “시부모나 친정부모가 아기를 돌본다”는 답이 24.6%

(조부모 15.4%, 외조부모 9.2%)였다. 특히 0~2세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경우 그

비율이 58.1% (조부모 37.2, 외조부모 20.9%)로 절반이 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아기를 다시 키운다는 것은 노인들에게 대단한 부담이며 노동이다.

김 씨는 “아들 키우는 거랑 손주 키우는 건 엄연히 다른 일 같다”며 “위탁 기관에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커서 애가 이렇다는 식으로

뒷말을 들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래서 지난 2월 말부터 4주간 구로구 보건소에서 실시한 ‘예비 할아버지

할머니 교실’에 남편 이용석씨와 함께 참여했다. 김 씨가 받은 교육은 우유먹이기

목욕시키기 마사지하기 놀이하기 등이다.

서울시는 조부모의 육아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구청단위의 노인대상 육아교육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구로구가 시작이었지만 동대문구 서대문구 등 서울시내 25개

구청이 교육을 실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손주와 아들 내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할 각오를 하는 노인들이지만

육아 부담이 어느 덧 스트레스가 되어 정신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경희의료원 정신과

백종우 교수는 “손주를 돌보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는 노인도 적지 않지만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야 하는 책임감에 구속 당하는 것처럼 답답해 하는 노인도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아기를 기르는 데는 우선 아이 부모와 조부모 사이에 솔직하고 편안한

대화가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빠 엄마는 부모에게 아이를 내팽개치듯 맡기기만

해서는 안되고 어떻게 어떤 아이로 키워나갈 것인지 상의하고 대화하라는 것.

백교수는 “노인들이 개인 시간 없이 육아에만 매달리면 결국 스트레스를 받는데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며 “부모님이 너무 힘들어 하시는지 살펴 아이

아빠 엄마는 역할을 분담하거나 시간을 조정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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