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약산업 연구를 이끄는 동력, 끈기와 성실”

우종수 한미약품 제제연구소장-신희종 삼진제약 중앙연구소장 연쇄 인터뷰

지난 달 25일 한국 신약개발상 시상식에서 우수연구자로 선정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표창을 받은 신희종 삼진제약 중앙연구소장(전무이사), 우종수 한미약품 제제연구소장(전무이사)은

서로 많이 닮았다.

약대 출신에, 각자의 연구소에서 면역억제제 사이클로스포린A제제와 소화성궤양용제

오메프라졸의 제네릭을 동시에 개발하는 등 선의의 경쟁을 해왔다. 각각 혁신적인

기술로 각자 회사에 크게 기여한 주인공들이다.

긴 시간 연구원의 불을 밝히며 한국 제약산업 발전에 이바지 해 온 한미약품 우종수

박사, 신희종 박사의 국내 제약 연구개발 주역으로서의 삶, 애환과 보람을 가까이서

들어봤다.

고혈압 복합개량신약 아모잘탄 개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한미약품 우종수

박사의 인터뷰부터 싣는다.

인터뷰1: 한미약품 우종수 전무이사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결석, 결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무이사’라는 직함에는 아직 앳돼 보이는 우종수 박사.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한미약품 팔탄공단에 근무하는 우박사의 출근시간은 아침 8시, 퇴근 시간은 저녁

9시다. 하루 기본 13시간은 일에 빠져 사는 그에게는 팔탄공단 ‘공장장’이란 직함도

있다. 전무이사, 제제연구소장, 공장장 일을 함께 하다보니 정신없을 것 같지만 지난해에는

복합 개량신약 아모잘탄 개발이란 큰 공을 세워 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한참 선배인 삼진제약 신희종 선배와 같이 상을 받게 돼 쑥스럽다”며 겸손해

하는 우 박사이지만 자신이 개발한 약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칼슘채널차단제(CCB)

계열 고혈압약과 안지오탠신수용체차단제(ARB) 계열 고혈압약을 합성한 것은 아모잘탄이

세계 최초.

“이게 단순하게 합친다고 해서 합쳐지는게 아니거든요.”

여러 번의 동물실험 및 임상 당시 기억을 떠올리던 우 박사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체크해가며 복합제의 흡수율과 혈중농도를 단일제와 똑같게 맞추는 섬세한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모잘탄을 개발하느라 소요된 시설투자비와 임상에

들어간 연구비는 무려 115억원. 이제는 단번에 연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는 효자상품이

됐다.

약대에 진학할 때부터 제약회사 연구원의 꿈을 가졌던 우박사. 그는 자신의 꿈을

무난하게 이룬 것 같아 보이지만 만만찮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영남대 약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모범생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약대 들어왔는데 적당히 해 약국 차리면

되지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냐”며 바보취급도 했다.

그는 정말 제약회사 연구원이 되고 싶었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다보니

당시 지원했던 제약사 면접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우박사는 “요즘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 때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자기를

뽑아준 곳이 한미약품이라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서 출퇴근 때 남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게 문제지만 아침에 더 일찍 출발하면 아무 문제 없다”며 여유를 보인다.

입사 당시 지방의 관리 약사로 근무하면 월급여 300만원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었다. 당시 한미약품의 월급은 60만원이었다. 우 박사에게 당장의 월급 액수는

중요치 않았다. 연구원의 꿈이 있었고, 국내 제약산업의 비전을 봤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사했고 지금은 한미약품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재작년 영남대 교수로 1년

반 있으면서 잠시 ‘외도’를 했지만 한미약품이 불러 다시 돌아왔다.

그는 초등학교~대학교 시절 단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 입사이후 결근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한 그는 1997년에 일을 터뜨렸다. 면역억제제의

거부반응을 줄이는 마이크로에멀전 기술을 사이클로스포린 성분 면역억제제 오리지널을

생산해내는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에 6,300만달러에 수출하게 됐다.

이는 국내 제약사가 다국적제약사에 기술을 수출한 최초 업적이다. 우 박사가

20년 연구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도 바로 이 때다. 제네릭 개발사가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기술을 개발해낸 것이다.

기술 수출을 성사시킨 우 박사는 36세의 나이에 최연소 이사에 오르게 됐다. 우

박사는 “지금 생각하면 팔지 말았어야 하는 기술이었는데, IMF 때라 팔았죠”라고

털어놓는다. 당시, 달러 한 푼이 아쉬웠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얼마나 큰 돈이었던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울컥하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국내 제약 연구계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한미약품이

지금처럼  성장하게 된 발판도 이 때 다져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그가 입사하던 때만해도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중 30위 정도 랭크했지만 1997년

기술수출로 자본을 확보하고부터 무섭게 성장, 이제는 3위권을 지키고 있다. 한미약품을

국내 메이저 제약사로 만든 일등공신을 우 박사로 불러도 된다.

급성장한 한미약품에도 약점은 있다. 슬리머, 아모잘탄 등 히트한 개량신약은

많지만 순수하게 자사에서 개발한 신약은 아직 없다. 우 박사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전망이 있다. 항암제를 중심으로 올 2020년까지 20개의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야무진

목표가 있다.

이를 이루려면 일선 연구원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우 박사는 “권위를 찾는 시대는

지났다”며 “소통을 못하는 리더는 사람관리를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출산휴가로 일을 잠시 떠난 직원이 아기를 낳으면 그는 꽃바구니를 보낸다. 100명이

넘는 연구원이지만 매일 얼굴을 보고 고충을 들어준다. 도움이 되겠다 싶은 자신의

연구원 시절 경험을 귀띔해준다.

제제연구소장인만큼 앞으로의 목표는 “어떤 약을 개발하겠다”보다는 “적은

양의 약 성분으로 최대 효과를 내도록 돕는 제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우박사는

“약 성분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며 “적은 양으로 목적을 달성하고 몸 안에서

빨리 없어지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우 박사는 특히 약을 잘 삼키지 못하고 물도 조금씩 마시는 노인이 먹는 약일수록

제제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설명한다. 연구원들은 간혹 크고 색깔이 예쁜 제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약은 보기 좋다고 먹기도 좋은 건 아니기 때문.

우박사는 제약 연구개발에 밤을 밝히는 모든 이들이 항상 환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 박사의 말대로 되면 한국 제약산업은 날개를 달고 비상할 것이

틀림없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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