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립보건원에서 빛난 한국인의 열정

말더듬이 유전된다는 것 밝힌 강창수 박사

“연구진행이 막혀 막막할수록 여기서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오기 같은 게 생기더군요.”

지난 2월 중순 미국 워싱턴DC 인근에는 111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다.

이 지역 일부 직장과 가정은 전기가 끊기기도 했다. 이 폭설로 집에 갇힌 한 한국인

연구원은 이날 자신의 연구결과가 인터넷망과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보도되는 것을

자택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현재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 후 연구원(POSDOC

포스닥)’으로 활동 중인 강창수 박사(41).

강 박사가 속한 NIH연구팀은 ‘리소좀 효소 경로에 생긴 돌연변이와 지속적 말더듬’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지난 달

게재했다. 미국 CNN방송과 ABC방송 한국의 SBS 등 많은 매체가 앞 다투어 이 논문을

소개했다.

사람이 말을 더듬는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는 인간의 12번 염색체에 말더듬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강 박사팀 논문의 개요. 말을 더듬는

것은 위압적인 부모나 선생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긴장하거나 지능이 떨어져서

생기는 습관으로 알려져 왔을 뿐 오랫동안 의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2005년 카이스트(KAIST)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강 박사는 좀 더 깊이 있는 인체유전학

연구를 하고 싶어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에는 아직 인체유전학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 박사는 미국행을 금세 결심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하는 암이나 당뇨 등의 질환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관심이 갔다”는 강 박사는 색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이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말더듬 유전자를 찾는데 함께 할 미 NIH 연구원 모집광고.

흥미로운 주제에 관심이 간 강 박사는 이 연구의 책임 연구원인 데니스 드래이너

박사와 면접하고 바로 확신을 갖게 됐다.

위기가 기회다(High Risk, High Return)

실험실 연구야말로 마감시간도, 만족할만한 결과에 대한 기약도 없다. 연구원들은

때로는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슬럼프를 겪곤 한다. 강 박사도 슬럼프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연구 3년째인 2008년, 강 박사는 말더듬 유전자의 존재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유전자를 찾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었다.

강 박사는 “마치 권투선수가 다운을 당한 기분이 계속됐다”며 “말더듬 유전자를

찾고자 하는 연구는 매우 어렵지만 만약 성공하면 큰 보상이 있을 것이라며 드래이너

박사가 격려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사촌끼리 결혼하는 파키스탄인을 연구대상으로..유전자 비슷

강 박사팀은 미국에서 연구했지만 연구 대상은 미국인이 아닌 파키스탄인을 선택했다.

강 박사는 “파키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남아시아 및 중동 국가는 남이

아닌 사촌끼리 결혼하는 것이 전통”이라며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유전자가 서로

비슷해 유전학 연구에 이점이 많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인정 많고 다른 사람을 잘 돕는 민족성 때문인지, 또는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않는 전통 때문인지 파키스탄 사람들은 DNA를 추출할 재료인 혈액 제공에

거부감이 거의 없는 것도 연구를 편케 해줬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연구를 돈 받으면서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

강 박사의 다음 프로젝트는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해 말더듬 생쥐를 만드는

연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말을 하는 것은 뇌의 명령을 통해 근육이 움직이는 것인데

이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더듬 생쥐를 활용해 밝혀 보고 싶다는 것. 이 프로젝트는

짧게는 3년에서 최고 10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

강 박사는 “관심 분야 논문을 읽고 재미있는 가설을 만들어 보고, 실험을 하는

것은 참 재미있다”며 “늘 즐거운 마음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했다더니, 강 박사는 “어렵기는 하지만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정말 재미 있어요” 한다.

기초 과학 연구에서 가장 큰 문제는 투자다. 오랜 시간 마음먹고 연구만 하려면

지원금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구나, 이 지원금은 이것을 공부하라, 저 실험을 해보라며

윽박지르지 않는 돈이어야만 한다. 강 박사는 “우리 정부가 기초과학 R&D 투자를

늘린다고 들었다”면서 “투자와 관심 그리고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면 한국의 기초과학기술

분야의 발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NIH의 200여 한국인 연구진 모두

국가대표 의식이 있고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

강 박사는 “한국인 특유의 승부욕 그리고 끈기는 생명과학을 연구하는데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손인규 기자 ikso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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