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제왕절개는 이제 미용도 고려

흉터 보이지 않게 가로절개 많이 해

‘제중원’ 병실에 아기가 거꾸로 자리 잡아 다리부터 나오고 있는 산모가 들어온다.

산파가 억지로 아이를 꺼내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이 때 “수술을 해야

겠다”며 여의사 릴리어스 호튼이 들어온다. 석란(한혜진)은 호튼을 도와 산모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한다.

보통 태아는 머리가 몸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태어날 때 머리만 빠져나오면 몸의

다른 부분도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된다. 그러나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머리가 위로가고

엉덩이가 아래쪽에 있는 모습으로 거꾸로 들어선 경우 다리부터 빠져나오다 보면

머리 부분이 산도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다리, 팔 등이 단숨에 부드럽게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빼 낼 때 아기의 신경 등이

눌리면서 다칠 수 있다. 이럴 때 산모와 태아를 모두 살리기 위해 제왕절개 수술이

꼭 필요하다.

실제로 산모와 태아를 모두 살리는 한국 최초의 제왕절개 수술은 조선시대 말인

1909년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미국인 선교사 존슨 박사가 시행했다. 당시 제왕절개수술이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원시적인 자궁 탈출증 치료 때문으로 보인다. 여성은 적절한

기간 산후 조리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출산 후 바로 일터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자궁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치료하려고 옛날 여성들은 질산을

바르거나 뜨거운 인두, 기왓장으로 자궁을 고정시켰다.

존슨의 제왕절개 수술이 아기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이것은 산후에 자궁이 탈출된 부인이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 자궁에 질산을 발랐거나

뜨거운 인두나 기왓장으로 자궁을 지졌을 경우였다. 옛날 어머니들은 이렇게 하면

자궁이 빠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자궁을 막아서 다음 번엔 자연출산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산모가 존슨에게 왔을 때 대개 아기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동산의료원 100년사’ 중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산부인과 전문의 정재은 교수는 “옛날 민간요법처럼

화학적으로 자궁을 막게 되면 정자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까지 막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어 불임이 돼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 전 제왕절개 수술은 미용보다는 산모와 태아를 모두 살리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제왕절개 수술을 한 후 수술자국이 크게 남는 경우가 많았다. 세로로 절개를

하면 의사의 시야가 더 많이 확보되고 더 빨리 수술을 끝낼 수 있는 등 의사의 입장에서는

더 편한 수술이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산모의 미용적인 면도 함게 고려하고 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다수가 배주름과 같은 방향인 가로 절개 수술을 하고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손가현 교수는 “태아의 머리를 꺼낼 정도의 길이로

배를 절개하는데 보통 10cm정도 된다”며 “세로로 가르면 흉터가 남아 여름에 수영복을

입기가  불편해지는 등 외관상 좋지 않기 때문에 배 아래쪽을 가로로 절개하는

수술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왕절개는 보통 태반이 아기가 나오는 길(산도)을 막았을 때, 아기가 거꾸로

나올 때, 분만진행이 잘 안되고 너무 지연될 때 결정된다. 제왕절개 후 다시 임신

했을 때 자연분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분만 과정에서 자궁이 터져 산모와 태아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확률이 0.3% 정도여서 처음에 제왕절개 출산을 하면 다음에도

수술을 권하는 경향이 있다.

박양명 기자 toan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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