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로서의 명예보다 환자 생명이 소중했다”

건대병원 해임 당사자 유규형 교수

“심장병 환자는 주치의와 절대적 관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교수가 저를

대신해 환자를 본다고 해도 환자의 차트를 보면 어떤 약을 썼는지 주의 사항은 뭔지는

알 수 있겠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뢰’는 알 수 없습니다. 최소한 한 달 정도

유예기간을 줬다면 환자들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환자들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병원 내부의 문제를 국제학회에 논문으로 발표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

보고해 조직의 화합을 깼다는 이유로 지난 15일 대학으로부터 전격 해임 통보를 받은

유규형 건국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착잡한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조직의 화합을 깼다고 하는데 조직의 화합을 지키기 위해 문제를 조용하게 처리하려

했고 객관적인 사실만 가지고 얘기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됐네요. 당장 무엇부터 처리해야

할지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앞이 캄캄합니다.”

심장병 환자들은 몇 번의 고비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고 장기간 한 의사에게 진료

받는 사람들이 많아 의사와의 관계가 다른 어느 과보다 돈독하다. 유 전 교수에게도

20년 넘게 진료를 받고 있는 60대 환자가 있다. 이 환자는 유 전 교수가 한강성심병원에서

건대병원으로 옮기자 병원을 옮겼다.

유 전 교수의 해임으로 환자들은 다른 교수에게 진료를 받거나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한다. 병원 측은 유 전 교수를 해임하면서 환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교수

사정으로 더 이상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원한다면 다른 교수에게 진료를 받게

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유 전 교수는 “부작용 논문이 발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논문이 표절이다’

‘동의 없이 환자 데이터를 이용했다’고 주장하는 송 교수와 병원 당국이 유럽흉부외과학회에

어떤 편지를 보냈는지 그 내용을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그런 내용을 모두 알면서도

대학 징계위원회에서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위치에서 그런 부작용을 관찰한다면 어느 의사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며 “잘나가는 의사를 발목 잡는 행위는 절대 아니었다”고 말했다.

유 전 교수는 의사가 ‘윤리’를 버리면 의료 기술자나 사기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믿는다. 그는 돈 못 버는 의사가 무능한 의사이고 돈을 많이 버는 의사는

실력 있는 의사로 비춰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런 풍조가 만연한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 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것이다.

그는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의사가 할 일이 아니다’ ‘문제 제기를 한

것도 의사의 명예보다 환자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의 희생이 의학계의 잘못된 풍토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애써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건대병원 심장내과 유규형 한성우 전 교수는 같은 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개발한 대동맥판막수술(CARVAR)을 받은 환자 20명에서 나타난 부작용 29건을 식약청에

보고하고 이 중 5명에서 나타난 9건의 부작용을 유럽흉부외과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유 교수는 2008년 6월부터 CARVAR 수술의 논란과 관련한 코메디닷컴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학자는 논문으로만 말한다”며 거절했지만, 해임을 당하고 처음으로 언론을

상대로 말문을 열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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