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피어 리뷰 vs 기술보호(상)

피어리뷰-국익창출이 충돌할 때는?

2007년 12월 7일 조선일보는 각박한 세상에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불릴 만한 한 의사의 사연을 소개했다.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2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 중 자녀 결혼 자금을 제외한 모든 금액을 사회에 환원키로 했다는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송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수술기구 때문에 갑자기 재산이

늘어 만일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결정했다. 대부분의 신문은 이 감동적인

사연을 기사화 했고 일부 언론은 국민 지도층이 송 교수를 본받아야 한다는 사설을

내기도 했다. MBC는 송 교수의 기부금은 미래가치가 1,000억 원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사람이 연말 가슴 따뜻한 소식에 미소 지었지만, 송 교수 주위의 많은 흉부외과

의사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의사들에 따르면 송 교수가 개발했다는 ‘종합적 대동맥판막

성형술(CARVAR)’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학회 차원에서 논란이 일고 있었다. 따라서

‘기부 희망’ 자체가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동료 의사들은 언론이 또 한

번 성급한 영웅 만들기에 나섰다며 혀를 찼다.

동료의사들의 비판은 ‘영웅 의사’에 대한 시기심에서 나온 것일까? 과학 연구에

있어서 전문가 집단의 검증은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이 말했듯,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과정은 아닐까?

송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 재직 중이던 1997년 새 수술법을 개발했다. 그 동안은

심장 대동맥 판막 환자에게 소나 돼지의 조직을 이용한 조직판막이나 기계식 판막을

넣는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기존 수술법은 그러나 주기적으로 판막을 교체하는

수술을 받거나 평생 항응고제를 먹어야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송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수술법이 한 번만 수술을 받으면 재수술을 하거나 항응고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 획기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수술의 안전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송 교수가 재직하던

서울아산병원 의사들이었다. CARVAR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에 피가 역류되는 부작용을

보인 환자가 잇따라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수술을 받은 뒤 심장 안에 염증이 생겨

동맥이 부풀어 오르는 가성동맥류로 사망한 환자도 생겼다는 것이 동료의사들의 전언.

서울아산병원에서는 환자의 수술 성적을 토대로 새 수술법을 객관적으로 검증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송 교수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건국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검증은 흐지부지 됐다.

다른 병원 의사들도 CARVAR 수술법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였고 대한흉부외과학회에서

이 수술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정리했다. 이런 와중에 송 교수의 재산 기증 약속이

나왔다. 송 교수는 한동안 ‘성역의 의사’가 됐다.

그러나 2008년 11월 열린 흉부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동료 의사들이 송 교수의

수술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때 코메디닷컴이 이 논란을 학회

동영상과 곁들여 자세히 보도해 그해 의학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송 교수는 다른 의사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특허 때문에 모든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 ‘설 자리가 없어진 의사들의 조직적인 음해다’ ‘한국이 유일하게 우위를

점하는 분야로 노벨상도 바라볼 수 있다’ 등의 이유를 들며 방어했다. 송 교수에

비판적인 의사들은 피어리뷰(Peer Review, 동료 학자들의 검증)라는 과학의 기본

전제를 무시하고 시술을 진행하면 환자의 안전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유럽과 미국에 특허를 출원중이고 이미 외국에서 아이디어를 도용한

복제품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국익 차원에서 당장 공개할 수 없다는 뜻을 강조했다.

피어리뷰 논란은 건국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들의 문제제기로 다시 이어졌다. 유규형

한성우 교수 등은 CARVAR 수술을 받은 사람 5명에서 나타난 심 내막염, 대동맥 역류,

관상동맥 협착 등의 부작용 9건을 유럽흉부외과학회에 논문으로 제출했다. 또 20명의

부작용 사례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보고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심장내과가 보고한 부작용은 심장 수술에 사용되는 심

정지액 주입기구로 인해 생긴 것으로 모두 CARVAR 수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오히려 심장내과 교수들이 수술의사 동의 없이 환자의 자료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논문이 게재되는 것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유럽흉부외과학회는

양측의 얘기를 듣고 심장내과의 논문을 정식으로 게재했다. 건국대에서는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심장내과 교수들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CARVAR 수술에 대해 송 교수는 모든 대동맥 판막 질환 환자에게 적용이 가능한,

부작용이 전혀 없는 획기적 수술이라고 주장한다. 동료 의사들은 그러나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수술법은 아직 없고 환자 상태에 따라 가장 적합한 수술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기적인 수술 성적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생

한 번 받으면 되고, 부작용이 전혀 없는 수술법이라는 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자기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강경훈 기자 kwkang@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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