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는 나르시즘의 분출?

뇌과학-정신분석학으로 본 잔소리

“꼭 아들 낳아라” “올해에는 꼭 결혼해야지” “얼마 번다고 맞벌이니, 애나

잘 키우지∙∙∙.”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이지만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 가족, 친척 모임이 써늘하게 바뀌기도 한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

1394명을 대상으로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설문 조사한 결과, 명절 스트레스 요인

중 결혼, 취업 등에 대한 잔소리가 32.3%로 3위에 뽑혔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사람은 흔히 충고라고 생각하면서 잔소리를

하지만 듣는 사람의 무의식을 건드려 갈등으로 빚어지곤 한다”며 “정신분석학과

뇌과학을 알면 잔소리와 이로 인한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왜 잔소리를 할까?

정신과 의사들은 잔소리로 인한 갈등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무의식의 충돌로

설명했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잔소리를 통해 무의식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자아감을

확인하는데, 이 말들이 듣는 사람의 무의식에 상처를 줘 보호본능을 촉발시킨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인 김혜남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잔소리를

일종의 나르시시즘으로 해석했다. ‘모든 사람은 내 생각에 맞춰야 한다’는 무의식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옛 집단사회에서는 가깝다고 생각하면 남의 생활에 침투해도 된다는 의식이

있어 남과 나의 경계가 불분명했다”며 “현대사회는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므로 잔소리가 상대방의 방어본능을 촉발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의 잔소리보다 가족, 친척의 잔소리가 더 큰 문제가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회 생활에서는 다른 사람의 무의식을 공격하지 않기 위해 서로 조심하지만 가족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어릴 적에 부모에

의해 자극이나 억압을 받았던 요소들을 무의식의 세계에 저장하는데 부모의 한 마디는

이 요소를 건드리기 쉽다. 특히 명절에 온 가족이 두루 모인 장소는 경험을 공유한

여러 사람의 무의식이 함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잔소리가 누군가의 무의식을 건드려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커진다.

잔소리의 뇌과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채정호 교수는 “잔소리를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참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참는다는 것은 전두엽의 기능인데 잘 참지 못하는

것은 전두엽이 잘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다 참는 것이 더 높은 인지기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전두엽은 이성적인 판단을 관장하는 영역으로 진화론적으로 가장 늦게 발달한

신피질에 해당한다. 감정, 본능적인 부분은 변연계가 담당한다. 갈등 상황에서 자기보호본능이

공격받으면 변연계가 활성화되고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된다. 이때에는 이성적인 판단과

합의보다는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커진다는 것.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의

영역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에 가까운 변연계가 서로 부딪히는 것이 잔소리로 인한

갈등이라는 설명이다.

인격 성향과 잔소리

특정한 인격성향을 가진 사람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 자기애적 인격성향과 수동공격적

인격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애적 인격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잔소리를 한다.

수동공격적 인격성향은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성격을 보인다.

정신의학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때 고개는 바짝 숙이고 발로는 페달을

힘껏 밟는 것에 비유해 ‘자전거를 타고 언덕 오르는 유형(Up-Hill Bike)’이라고

부른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는 침묵하면서 착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처지는 아랑곳 않고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수동공격적이거나 자기애적 인격경향이 강한 부모가 자기애적이나 경계선 인격경향을

띠는 자녀에게 잔소리를 하면 집안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잔소리의 해결법

별 뜻도 없이 한 잔소리 때문에 생기는 가정 불화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채정호 교수는 “매번 사소한 것을 얘기하는 것은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고 행동을 바꾸는데 효과적이지도 않다”며 “말하는 빈도를

줄이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마디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뇌로 들어오면 뇌는 이 모든 것을 처리하지 않고 아예 정보를

차단하게 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건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도 “얘기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며 “대화의 방법을 바꿔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관점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양찬순 신경정신과 원장은 “가족도 남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특정 인격경향의 부모나 친척이 스스로 잔소리를 거두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 잔소리를 듣는 사람이 이런 현상들을 이해하고 가족의 말에

울컥하면 ‘아, 내 무의식에 상처를 받았구나, 변연계가 전두엽을 막고 있구나’하며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만 해도 잔소리가 갈등으로 번지고,

더 큰 잔소리를 듣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강경훈 기자 kwkang@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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