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의사지시 무조건 따라야 하나?

법원 "환자는 의사 지시에 협력할 의무 있어"

최근 법원에서 환자가 진료에 협조하지 않아 의료사고가 발생했다면 병원과 의료진은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이번 판결로 의료현장에서

의사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넓어지게 된 반면 환자의 권리가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0일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환자였던 A씨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제기한 ‘진료협조의무와 손해배상책임’ 항소심에서 병원 측은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병원 측이 손해배상 책임을 30% 져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결과다.

결혼 전 10년간 간호사로 일했던 A씨는 임신 29주째였던 2004년 11월 14일 저녁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가 있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시 상태를

검진한 의료진은 A씨에게 흉부방사선 촬영과 분만실 입원 등을 권유했다. 그러나

A씨는 임신부라서 위험하다며 흉부방사선 촬영을 반대했고, 분만실보다는 일반 병실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의료진의 요구를 거부했다. 3시간 가량이 지체된 뒤 A씨의

호흡곤란 증세가 심각해져 결국 흉부방사선 촬영이 시행됐고 폐부종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환자는 곧 호흡정지로 인한 심정지가 왔다 회복됐고, 의료진은 응급제왕절개술을

실시 남아와 여아를 출산토록 했다. 그러나 남아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여아는

약 10개월 후 사망했다.

이에 A씨는 “의료진이 환자의 호흡곤란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폐부종 진단이 지연됐다”며 “이로 인해 심정지와 출생한 아들이 사망에

이르게 됐으므로 의료진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병원 측은 “환자가

의료진의 처방과 지시를 거부한 점을 들어 진료와 치료에 과실이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고법은 “환자는 전문가인 의사의 진료상 행하는 지시를 충실히 따라야

하는 협력의무를 진다”며 “환자 측이 이런 협력의무를 위반해 질병의 치료를 달성할

수 없는 경우 의료인이 진료의무를 태만히 했다거나 진료과정상의 부주의로 인한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의료진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날 제17민사부는 환자의 진료협력에 관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유사한 다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병원 측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 역시 병원 측이 손해배상 책임을

30% 져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결과다. 의료진의 흉부 CT 촬영 지시를 거부하고

환자 보호자가 병원을 옮겼고 그 뒤 환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환자 보호자가 병원

측에 책임을 물었으나 결국 항소심에서 기각된 것이다.

 “환자권리 침해하고 의사에 지나친 재량 준 판결”

고법의 이 같은 판결에 대해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환자는 의사에게

이행청구소송을 할 수 있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이행청구를 할 수 없다”면서 “환자의

협조의무는 적용되지 않으며, 환자가 간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환자의 소송을

기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환자와 의사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는 계약에서 약자인 환자에게

협력의무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계약의 본질과 환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며

“이번 판결로 앞으로 의사에게 지나친 재량을 주게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박형욱 교수는 “환자는 진료에 협조할 의무가 있고

의료진은 진료에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며 “환자가 지시를 거부할 경우 의사는

강제할 수 없다”며 “이때 얼마나 수차례 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환자의 진료거부에 따라 의사에게 책임

없다는 식의 이번 판결은 향후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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