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피에 자사 제품광고했다고 해고라니…

전문약 대중광고 ‘규제 전봇대’로 소비자만 피해

미국계 A 제약회사 병원영업부장인 박인규 씨는 29일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5개월 전까지는 대웅제약에서 비만치료제

엔비유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대웅제약이 작년말 자사 홈페이지에서 진행한 비만치료제 엔비유 캠페인에서 ‘I

eNVY yoU’란 문구를 사용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은 엔비유 상품명을 연상시킨다며

약사법상 전문의약품 대중광고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6개월의 해당제품 판매금지조치를

내렸다. 대웅제약은 5000만 원의 과징금으로 갈음했고 며칠 후 박 부장은 인사 조치됐다.

제약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회사가 현재 생산 시판하는

제품 소개란에서 일반약, 전문약 구별 없이 제품의 특장점을 비롯해 부작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정보를 아무런 제한 없이 올려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부장이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박 부장은 “모든 제약회사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불특정다수 즉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문약을 소개(광고)하고

있습니다. 대웅은 여기에 캠페인이란 타이틀을 붙였을 뿐이지요”라고 설명했다.

 이를 대중광고라고 한다면 제약회사들이 홈페이지에서 전문약을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행정처분을 받아야 하는데 왜 유독 엔비유만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

전문약

대중광고 금지조항 위반행위의 단속 대상은 온라인만이 아니다.

국내 제약회사가 개발한 발기부전치료제인 동아제약 ‘자이데나’와 종근당 ‘야일라’도

대웅과 비슷한 시기에 식약청의 6개월 판매금지 조치를 받아 과징금 5000만 원씩으로

갈음했다. 혐의 내용은 동네의원 입구에 상품명이 들어간 입간판을 만들어 세워 준

것과 병원 진료대기실 벽에 제품명이 쓰여진 포스터를 붙인 사실 등이 대중광고라는

것이다. .

사문화 된 규정으로 환자-제약사 등 피해자 양산

현행 약사법상 의약품은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만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전문약과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약 두 가지로 나뉜다. 전문약은 대중광고가

금지돼 있다.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과 A 교수는 “의약품 분류와 관련된 광고 규제는

이제 국민 편의에 따라 전면 재조정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문약 대중광고 금지의 법적 근거는 약사법 시행규칙 제84조 제2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전문약을 광고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의약전문지뿐이다.

의사 약사를 상대로 종이신문을 발행하는 전문지가 요즘에는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같은 내용을 올려놓고 있고 전문약 광고도 마찬가지로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있다.

인터넷 생활화로 의약품 광고환경은 이미 혁명적으로 변했다. 의약전문지의 전문약

광고를 의사 약사만 보는 것이 아니고 환자나 일반인도 똑같이 본다.

각종 학회지, 기관지, 상업지 등 현재 100여개에 달하는 의약전문지 대부분이

인터넷 웹 형태로 운영돼 일반인 누구나 아무런 제한 없이 볼 수 있다. 약사법 시행규칙의

규정대로라면 이들 인터넷 의약전문지에 게재된 전문약 광고는 일반 대중들이 보고

있으므로 모두 불법이 되는 셈이다.

약사법상 의약전문지에만 허용된 전문약 광고 규정은 이처럼 이미 사문화한지

오래다. 그런데도 이 규정에 걸려 과징금을 내야하는 제약사는 내심으로는 승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인터넷 시대에 맞는 관련법 개정 시급  

의약품오남용 방지라는 약사법 취지도 다른 장치로 보장할 수 있게 됐다. 전문약

대중광고 금지 규정 도입 당시에는 일반인이 의사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전문약을

살 수 있었으나 의약분업 이후 전문약은 의사 처방전 없이는 살 수 없도록 하는 새로운

규제 장치가 마련됐다. 전문지에서만 전문약을 광고하도록 규제하지 않아도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약 대중광고 금지 규정은 이제 ‘낡은 규제

전봇대’가 돼 버렸다.

식약청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등 매체환경이 변해 이 조항만으로 규제하면 사실상

모순이 발생한다”면서 “현실에 맞게 개정하기 위해 심도 있는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청은 올 초 과감한 규제 개혁과 완화를 통한 친기업적 컨설팅기관

지향을 표방하는 사업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전문약 대중광고 금지조치는 1990년에 시작돼 올해로 시행 19년째를 맞고 있다.

그간 단 한 번도 개정되거나 바뀐 적이 없다.

오랜 세월 전문약 대중광고를 금지해온 폐해는 일부 약품의 암거래 시장 등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해피 드럭(happy drug)이라 불리는 발기부전치료제 비만치료제 대머리치료제 근육강화제

등의 밀수입과 불법판매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이메일이나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한

불법 광고는 이들 약에 대한 소비자의 강한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들 약은 모두

전문약으로 분류돼 대중광고를 할 수 없다. 이런 틈새를 노려 의학적 근거가 희박한

허위과대광고가 난무하고 불법적인 암거래가 판을 친다.

한국화이자의 한 임원은 “중국 등을 통해 밀수입되는 가짜 비아그라의 폐해는

따지고 보면 소비자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못하게 막고 있는 광고 규제

때문”이라며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캠페인을 하고 싶어도 전문약으로 묶어놓고

광고를 못하게 하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해피 드럭과 같은 국민다소비의약품은 대중광고를 허용하든지

아니면 전문약으로만 분류하는 것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약과

일반약 외에 미국 등 선진국처럼 소비자직접구매약(DTC‧ Direct To Consumer)이란

범위를 새로 정해 대중광고를 허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약이라도

이미 TV 등에 대중광고한 사례는 있다. 6월1일부터 대중광고가 나간 한국MSD의 로타텍은

전염병 예방백신으로 분류돼 지난해 개정된 전염병 예방법의 특별규정에 따라 19년

만에 대중광고가 허용된 제1호 약품이 됐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최근 전문약과 일반약의 분류가 잘못돼 있다며 이의

시정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보건복지가족부에 전달했으나 검토하겠다는 회신만 받았다고

밝혔다. 경실련 김태현 사회정책국장은 29일 “의약품 분류 문제는 의약사단체의

이해관계가 걸린 매우 예민한 사항”이라며 “정부 역시 이점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어떤 식이로든 국민 편의성을 우선 고려해 관련법규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종 중견제약회사의 P 대표는 “19년 전 정부가 전문약 대중광고 금지 규제를

 정한 근본 취지는 의약품 오남용 방지였다”며 “시행 당시와 현 상황을 놓고

소비자 의식과 정보 욕구, 광고환경, 규제 장치 등을 비교한다면 이 규제의 폐지는

벌써 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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