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논-쪽빛바다 “눈이 시원”

남해금산 트레킹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의 ‘남해 금산’ 전문>

왜 남해 금산은 그냥 금산이 아니고 꼭 ‘남해 금산’일까? 충남 금산과 구별하기

위해서일까? 하긴 두 곳 모두 ‘비단 산(錦山)’이라는 뜻은 똑 같다. 하지만 남해

금산은 ‘바다에 문득 숯불처럼 달아오른 비단 산’이어야 제격이다. 남쪽 바다가

없는 금산은 헛꽃이다.

이성복 시인(1952∼)은 남해금산을 ‘ㅁ’이라는 ‘모성의 자음’으로 기억한다.

‘남∼’자와 ‘금∼’자의 ‘ㅁ’ 받침은 그에게 어머니로 다가온다. 문, 물, 몸,

물질, 무너짐, 무두질…. ㅁ으로 시작되는 단어는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면 부드럽다.

포근하고 아늑하다. 두 입술이 만들어내는 뼈 없는 소리. 살과 살이 지그시 맞닿아

내는 속삭이는 소리.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같은 소리.

16일 남해 금산은 봄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물안개가 자욱했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땅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때론 보슬보슬 내리다가, 갑자기

주룩주룩 쏟아졌다.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정현종의 ‘하늘을 깨물었더니’ 전문>

가끔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코에 걸렸다. 파도 소리가 우르르 몰려 왔다가, 와르르

멀어졌다.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은 온통 비에 젖었다. 계단식 ‘다랭이 논’은 30여

층이나 위에서 아래로 쫘악∼ 펼쳐졌다. 폭이 1∼2m밖에 되지 않는 논도 많았다.

넓은 것도 기껏해야 10m가 넘지 않았다. 논엔 온통 늙은 마늘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못자리엔 물이 벙벙했다.

안개바다에서 소리를 보는 관음이 되다

청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책을 읽었다. 마을 폐교에선 뻐꾸기가 울어댔다. 마을

한가운데 ‘밥 무덤’과 ‘암수바위(남근상과 여성 임신상)’는 묵묵히 비를 맞고

있었다.

코오롱패션의 여유정 대리(33)는 “켜켜로 쌓인 듯한 다랭이 논의 흑백 배경과

그 사이를 오가는 울긋불긋 옷차림의 관광객들 모습이 몽환적이었다. 난 사진보다는

비 오고 안개 낀 날의 구불구불한 논밭둑길 걷는 게 더 좋았다. 마치 꿈 속에서 트레킹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해 금산은 사람의 허파꽈리와 닮았다. 두 개의 허파꽈리가 각각 두 개의 다리로

육지와 연결된다. 바다 쪽에서 봤을 때 오른쪽 섬은 삼천포대교로, 왼쪽은 남해대교로

이어진다. 삼천포대교 위쪽은 사천, 고성, 통영으로 이어지고, 남해대교 너머엔 소설

토지의 무대 하동이 웅크리고 있다.

금산(해발 681m)은 오른쪽 허파꽈리 아래쪽에 상주해수욕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17일 아침 금산 보리암은 바다 안개에 묻혀 있었다. 카메라 앵글엔 안개가 넘실거렸다.

여기저기 똬리를 틀고 널름거렸다. 트레킹 참가자들은 귀로 남해 금산과 보리암을

보았다. ‘소리를 본다’는 관음(觀音)보살이 되었다.

계곡물이 우렁우렁 힘차게 흘러내렸다. 안개 속에서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할머니들은 한 땀 한 땀 힘들게 보리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보리암 보광전엔 이미 “관세음보살”을 외며 기도하는 신도들로 가득했다.

밖에 우뚝 서 있는 해수관세음보살상 앞에도 참배자들은 북적였다. 암자 아래는 온통

안개로 아득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중에서>

류시형 씨(26·대학생)는 “산 아래 바다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안개에

둘러싸인 보리암의 운치는 환상적이었다. 조릿대 숲에선 스멀스멀 안개가 끊임없이

기어 나왔고, 스님을 따라 ‘관세음보살’을 외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도 절절했다”고

말했다.

입술 뒤엔 단단한 이가 있다. 부드러움 뒤엔 억센 뼈가 숨어 있다. 남해 바다는

잔잔하지만, 문득 한가운데에 금산이 우뚝 솟아 있다. 삐죽삐죽 바위들이 서 있다.

흔들바위, 도선바위, 좌선대, 사선대, 상사바위….

이성복 시인은 그것을 ‘남∼’자의 ‘ㄴ’과 ‘금∼’자의 ‘ㄱ’의 어우러짐으로

푼다. 바다의 너그러움을 대표하는 ㄴ과 금산의 날카로움을 뜻하는 ㄱ이 얼쑤! 하며

멋들어지게 출렁인다는 것이다. ‘물과 흙의 혼령’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춤을 춘다는

것이다.

처녀 사모해 뱀이 됐다는 상사바위

상사바위 아래는 깎아지른 천길 절벽이다. 그곳에 서면 발 아래 상주해수욕장이

눈에 밟힌다. 상사바위는 어느 예쁜 처녀를 사모하다가 끝내 죽은 총각의 전설이

서려 있다. 총각은 죽어서도 뱀이 되어 밤마다 처녀의 꿈에 나타났다. 그녀의 몸을

칭칭 감고 떨어질 줄 몰랐다. 처녀는 이 바위 앞에서 제발 꿈에 그 뱀이 나타나지

말기를 간절히 빌었다. 결국 뱀은 스르르 몸을 풀고 꿈 속에서 사라졌다.

사랑은 고행이다. 그 중에서도 짝사랑은 ‘끌탕의 천형’이다. 사람 한뉘 정말

헛되고 헛되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저마다 기꺼이 그 등짐을 질까. 그저

강호의 도린 곁에서 무심히 낚시나 하면서 살면 안 될까?

미조항은 남해 금산의 발목을 찰랑찰랑 간질이는 곳이다. 미조항에서 물건리∼창선교로

이어지는 20여 km 길은 아슴아슴하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이다. 걸어서 4∼5시간이면

충분하다. 쪽빛 바다가 새뜻하고 우련하다. 쪽물에 머릿속까지 물든다.

물건리엔 해일이나 소금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천연기념물 숲 방조어부림이

있다. 팽나무, 푸조나무, 참느릅나무, 보리수 등 300여 년이나 된 고목 1만여 그루가

해안을 따라 1.5km나 초승달처럼 늘어서 있다. 늙은 이팝나무 머리가 하얗다. 숲

속엔 하얀 찔레꽃잎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다.

회사원 김병호 씨(41)는 “물건리 해안 숲 앞에서 트랙터로 논갈이 하는 농부를

앵글로 잡아 봤다. 물건리 앞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독일마을(서독에 갔던 광원과

간호사들이 돌아와 사는 곳)도 아름답긴 했지만, 어쩐지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레킹 정보|

◇교통

▽항공기: 김포∼사천(대한항공, 아시아나) ▽고속버스: 서울강남고속터미널 서울∼진주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주∼남해 직행버스(1시간 소요) ▽승용차: 서울∼경부고속도∼대전통영고속도∼사천나들목∼남해고속도∼하동나들목∼남해

◇먹을거리: 남해는 멸치쌈밥이 으뜸이다. 죽방렴(갯벌에 대나무를 꽂아 만든

어장)에서 갓 잡은 멸치로 새콤달콤하게 조린 ‘멸치조림’이 맛있다. 상추, 깻잎

등 야채에 밥 한 숟가락과 멸치조림 그리고 달콤한 남해마늘 등을 얹어 먹으면 입

안에 사르르 녹는다. 남해는 8할이 마늘 농사다. 남해 마늘은 톡 쏘지 않고 은근새콤하다.

멸치쌈밥은 멸치가 손가락 크기가 되는 5∼6월이 제철. 뼈가 연하고 향긋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난다. 뼈째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한 사람 8000원. 삼동면사무소가

있는 지족의 ‘여원(055-867-4118)’이 이름났다. 창선교 밑에 설치된 죽방렴 멸치를

쓴다. ‘뼈대 있는 멸치는 맛도 영양도 금치’가 식당 캐치프레이즈. 그 부근의 단골식당(055-867-4673)도

발길이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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