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호흡기 떼는 시기 신중 결정”

세브란스병원,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밝혀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21일 내려진 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열고 병원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은

많은 고민 끝에 내려진 판단이라 믿는다”며 또한 “대법원의 판결문이 도착하는

대로 판결문 내용을 확인한 뒤 병원 윤리위원회를 개최하고 환자의 가족과 심도 있는

논의를 더 거친 뒤 인공호흡기를 떼는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료원장은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간 이유에 대해 “1997년 보라매병원 의료진이

가족의 요청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한 데 대해 살인방조죄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례가

있어 병원 입장에서는 1, 2심의 패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결정을 듣고자 했다”며

그간의 신중했던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겠다면서도 “현재 환자의 상태가 심각한 뇌 손상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지만 통증에 반응을 보이고 혈압 등도 안정적이며 튜브

영양 공급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지적한 ‘명백한 사망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이견을 표출하기도 했다. 환자의 상태와

대법원의 판결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용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미였다.

박 의료원장은 “사회단체나 개별 병원 또는 개인이 무분별하게 존엄사에 대해

경쟁적으로 의견을 발표하는 것은 갈등과 혼란을 불러 올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며

“오늘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각계의 의견을 모아 존엄사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환자에 적용할 3단계 가이드라인 공개

이날 연세대의료원은 3단계로 나뉜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김 모 할머니(77)에 대한 인공호흡기 제거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이다.

1단계는 뇌사 환자나 여러 장기가 손상된 환자 등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에 대한

지침이다. 이 경우 환자 가족이 동의하고 의사, 목사, 변호사, 법학 교수, 사회 대표

등으로 이뤄진 윤리위원회가 승인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한다.  

2단계는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 경우 본인 또는 대리인이 작성한 사전의료 지시서와 함께 가족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윤리위원회가 승인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한다.

3단계는 식물인간 상태지만 호흡이 스스로 가능한 환자에 대한 지침이다. 이 경우

스스로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2단계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수 없으며 따라서 앞으로

사회적, 법률적 합의를 통해 세부 지침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김 씨는 2단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세브란스병원은 자체

가이드라인에 따라 앞으로 가족과 협의하고 윤리위원회를 열어 인공호흡기를 떼는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이 21일 제시한 존엄사 가이드라인과 서울대병원이 18일 공개한 사전의료

지시서와의 차이점은 서울대병원이 적용을 말기 암 환자에 국한한 반면 세브란스병원은

모든 환자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다만 연세의료원은 이 가이드라인이 21일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준비된 것이므로

앞으로 각계의 의견을 모아 최종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정은지 기자 jej@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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