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동안 인류를 괴롭힌 10대 전염병

전염병 공포에 따라 짚어보는 역병의 역사

신종플루, 손발입병(수족구병)에 A형간염까지…. 대한민국에 때 아닌 전염병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사실 전염병은 인류 역사의 가장 큰 공포였다. 인류는 지난 1000년 동안 자연자원을

찾아 이동할 때마다 새로 만난 바이러스와 세균 때문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바이러스와 세균으로 인한 전염병은 인류 문명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인류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집단공포 속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생존의 메커니즘을 배워야

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정복한 전염병은 천연두 하나밖에 없다. 지난 1000년간 인류를

괴롭힌 전염병을 짚어본다.

①12세기의 한센병= 문둥병, 나병으로도 알려진 이 병은 구약성경에도 나올 만큼

역사가 깊다. 11세기 십자군전쟁 중 중동에서 ‘강력한 나균’이 유럽에 들어와 13세기까지

급속히 번졌다. 레프로사리움 또는 라자렛토라고 불리는 수용소가 잇따라 생겼다.

그러나 한센병은 곧 이은 ‘대재앙의 전주곡’일 따름이었다.

②14세기 ‘흑사병(黑死病)’=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숨지게 한 페스트는 1348년

유럽에 상륙했다. 페스트는 인도와 아시아 남부에 살고 있는 곰쥐의 벼룩을 통해

옮겨지는데 14세기 몽골군의 침략에 따라 유럽으로 몰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트가 창궐할 때는 모두가 ‘미쳤다.’ 독일에선 서로 채찍질하면서 고행을

즐기는 광신도들이 급증했고 유태인들에 대한 집단 살육도 숱하게 이뤄졌다. 페스트는

인간성의 본질을 생각게 했을 뿐 아니라 민족국가 탄생과 종교개혁 등 문명의 대전환을

불러왔다. 사람들은 무력한 교회 대신 페스트에 대해 비교적 신속히 대처한 도시

정부를 믿기 시작했으며 라틴어에 정통한 사제들이 줄어들어 라틴어 대신 세속적

언어가 공식 문서에 쓰이기 시작하는 등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마련됐다.

소설가 카뮈는 ‘페스트’에서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썼다.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일러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는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에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대목은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③16세기 매독(梅毒)= 1494년 프랑스의 샤를르 8세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의 병사로 연합군을 편성해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나폴리에서 병사들에게서

나병보다 더 심한 피부병이 나기 시작, 긴급 철수해야만 했다. 매독 때문이었다.

최근까지는 콜럼부스가 이 병을 신대륙에서 가져왔고 스페인 병사들을 통해 퍼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전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질병 프람베시아가

사실은 매독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지금은 ‘신대륙 기원설’과 ‘균 변이설’이

서로 싸우고 있는 형편이다.

유럽에 매독이 창궐한 것은 매춘 문화의 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509년

베니스 인구 30만 명 중 30분의1인 1만1000여명이 매춘부였을 만큼 유럽은 매춘의

대륙이었다. 매독이 성병으로 알려지자 매독 환자들은 수모 속에서 나환자촌으로

추방됐지만 나환자들조차 그들과 같이 있기를 꺼렸다. 그러나 귀족들 사이에서 매독이

만연하자 이 병에 걸리지 않은 남자를 목석으로 여겼다. 볼테르는 그의 시에서 매독을

‘사랑의 꽃다발’로 표현하기도 했다.

④발진티푸스= 매독과 비슷한 시기에 키프로스 섬에서 전투에 참여했던 병사들을

통해 스페인에 들어왔다. 1526년 이탈리아를 침공한 프랑스 군에서 돌았으며 19세기

초 아일랜드 감자 기근 때 다시 유행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200만∼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군사적으로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했지만 인구를 크게 줄이지는

않았다.

⑤아메리카를 초토화한 역병 천연두= 유럽이 매독과 발진티푸스 등에 시달릴 때

‘신대륙’ 아메리카는 생전 처음 겪는 역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스페인의 침입 이전

아메리카의 인구는 대략 1억 여 명이었으나 이 중 90% 이상이 새 전염병 때문에 숨졌다.

바로 1518년 유행한 천연두였다.

2년 뒤 아스텍의 원주민들은 침략군인 스페인 군을 물리칠 기회가 있었으나 천연두

때문에 퇴각해야만 했다. 천연두는 아스텍의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 잉카제국 등을

초토화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어릴 적 이 병에 감염돼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면역력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던 것.

1980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가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공식발표했다.

3년 전인 77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가 발견된 뒤 환자가 보고되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1960년 세 명이 이 병에 걸린 것을 끝으로 환자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환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무서운 병이다. 지구는 천연두의

처녀지(處女地)가 됐다. 그래서 천연두균이 나돌면 스페인 침략기의 아메리카 격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⑥‘백색 페스트’ 결핵= 인도에선 기원전 1000년경, 중국에선 수나라 때 결핵에

대한 기록이 있었지만 대규모 창궐은 유럽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된

19세기에 비로소 이뤄졌다. 최근 200년 동안 10억 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시인

키츠, 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 음악가 쇼팽 등이 모두 희생자였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사망률이 최고다. 매년 3만 명에게서 발생해

2500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최근 여성의 무리한 다이어트가 주요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⑦스페인독감= 신종플루 때문에 스페인독감의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20세기

들어 세균학이 승리를 거두고 있었지만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이탈리아말로 ‘천체의

영향’이란 뜻의 인플루엔자, 즉 독감이었다. 1918년부터 2년 동안 지구촌을 휩쓸면서

2500만∼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식민지 조선에서도 740만 명이 감염돼 14만

명이 숨졌다.

스페인독감은 1차 대전 때 미국의 병영에서 첫 발생했으며 병사들의 이동에 따라

세계로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선 프랑스 전선에서 먼저 발병했으나 스페인

언론에서 이를 보도했다고 해서 스페인독감이라고 이름 붙었다. 다른 나라는 전쟁으로

인한 보도통제 때문에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것. 스페인독감은 1차 유행 뒤

2차 유행 때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는데, 이 때문에 전염병 전문가들이 현재의 신종플루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⑧콜레라= 이것도 유럽의 식민지 정책이 퍼뜨린 병이었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의

벵갈 지방에 유행하던 풍토병. 1817년 영국군의 배를 통해 캘커타로 옮아졌고 1826년

벵갈 지방에 재유행하면서 러시아 남부에까지 퍼졌다. 러시아는 전쟁을 통해 페르시아

터키 폴란드 등에 이 병을 옮겼고 1830년대엔 이집트 영국 캐나다 미국 멕시코까지

퍼졌다. 무엇보다도 이 병은 이슬람 지역을 초토화했다. 1831년 이슬람교도의 순례지인

메카에 상륙, 1921년까지 최소 40번 유행하면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것.

⑨말라리아= 기원전부터 아시아와 유럽 등에 있었으며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의

기록에도 나오지만 아메리카에는 없었다. ‘콜롬부스의 선물’로 추정되며 1493년

남미를 초토화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0년에 24억

명이 이 병에 걸렸지만 지속적인 모기장 공급 운동의 덕분에 5억 명으로 줄었다.

90년 초 발간된 브리태니커 사전에선 국내에선 근절된 것으로 추정됐지만 최근

환자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한편 어떤 매독 환자들은 말라리아에 걸리면 매독이

빨리 낫곤 했다. 율리우스 바그너 등은 이 사실을 발견해 1927년 노벨의학상을 탔다.

⑩밀레니엄 최후의 역병 에이즈= 1980년 11월 미국 UCLA대학의 마이클 고트리브

박사는 생전 처음 보는 환자를 만났다. 32세의 화가였는데 목구멍에 지독한 진균

감염이 있었고 폐렴도 겹쳐 있었다. 고트리브는 이 환자의 혈액을 검사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면역 조직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던 것.

같은 시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에서도 똑같은 증세의 환자가 병원을 찾고 있었다.

고트리브는 미국 질병관리센터(CDC)에 즉각 보고했고 CDC의 주보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8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몽따니에 박사가 에이즈 바이러스(HIV)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85년 왕년의 인기스타 록 허드슨이 언론에 자신이 환자임을

알리고 미국인의 심금을 울리기 전까지 에이즈는 동성애자의 병이라며 ‘쉬쉬’ 하는

차원에 머물러야 했다. 지금 세계의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어

비록 바이러스 자체를 박멸하지는 못하지만 병을 억제 관리하는 수준까지 왔다.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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