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비싼 약값 때문에 우는 아들

한 앰플 150만원…“희귀병 환자는 죽어야 하나”

“어버이날이요? 카네이션도 못 보실 텐데…”

서울의 한 대학병원 로비에서 만난 김상현(46세, 서울 성북구 거주) 씨는 말끝을

못 맺고 흐느꼈다.

그의 부친(78세)은 몇 달 전부터 양쪽 눈에 습성 황반변성이 나타나 최근까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황반변성은 안구에 비정상적으로 생긴 핏줄이 황반을

파괴하는 병으로, 발병 뒤 수개월에서 2~3년 사이에 실명할 수 있다.

황반변성은 건성과 습성으로 나뉘며, 실명까지 이를 수 있는 습성(삼출성) 황반변성

환자는 국내에 5000~7000명 정도로 추산되며 노인 환자가 많다.

김 씨가 서러운 이유는 비싼 약값 때문. 치료제인 주사약 ‘루센티스’는 1앰플에

150만 원이나 하기 때문에 서적 외판을 하는 그에겐 너무 큰돈이다. 몇 달 동안 약값을

대기 위해 빌릴 수 있는 돈은 모조리 끌어 모았지만 이제 더 이상 빌리러 갈 데도

없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아버지는 곧 실명 상태가 된다.

약값이 이렇게 비싼 것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희귀병 환자를 위해 꼭 필요한 약에는 보험가가 책정됐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시작되면서 약제 적정화 제도란 이름으로 약값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이뤄졌고,

그 뒤부터는 환자 숫자가 많지 않은 희귀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에 대해서는 보험

적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 환자가 30여 명으로 추산되는 요소회로이상증은 선천적 간대사 장애다. 환자의

85%는 열 살 미만의 어린이다. 치료제 ‘암모뉼’은 주사액 1앰플에 250만 원이나

된다.

약에 대한 보험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최근 이 약에

대해 대한소아과학회에 자문했다. 학회는 요소회로이상증의 유일한 1차 치료 방법은

간투석이지만 2차 치료제로 이 약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렇게 “꼭 필요하다”는 학회 의견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험 급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2년 전 이 약을 국내에 들여온 수입업체 관계자는 “이 약이 없으면 환자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반드시 필요한 약에는 보험급여를 미루고, 꼭

필요하지 않은 약들에는 보험급여를 해주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수입업체는 최근 이 약에 대한 수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꼭 필요해도 희귀병 약에는 보험 급여 안한다?

이들 약은 정부가 지정한 희귀 의약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고시한 희귀 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희귀 질환은 환자가 2만  명 이하며, 적절한 치료

방법과 대체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이다. 희귀 의약품은 희귀 질환에 사용되는

의약품이다.

정부가 희귀 의약품에 대한 즉각적인 보험 급여를 중단한 것은 2006년 12월 이른바

‘약제 적정화 제도’가 도입하면서부터. 당시 한미 FTA협상을 앞두고 정부는 국내

제약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수입 약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약물 경제성 평가를 보험 약가 결정에 반영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고가의 수입 의약품은 희귀 의약품 지정 여부와 상관없이 심평원 약제급여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야 보험 급여가 결정되도록 바뀌었으며, 이 과정에서 보험 급여가

한정 없이 미뤄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비싼 수입 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주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논리

때문에 결정이 미뤄지는 것이지만, 이런 경제논리 때문에 희귀병 환자들은 감당할

수 없이 비싼 약값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희귀의약품정보센터 구현민 연구관(약학박사)은 “희귀 의약품은 모두 응급을

요하는 필수적인 약”이라며 “여러 환자들이 안타까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루

빨리 보험급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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