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슈퍼판매’에 재정부-복지부 설전

재정부 ‘허용해야’에 복지부 ‘필요없다’

슈퍼마켓에서 일반약을 판매하는 방안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방전을

시작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외국에선 소화제 같은

간단한 약은 슈퍼에서 사먹을 수 있다. 이것만 풀어도 제약업계 매출이 몇 십%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해 왔다. 5월 발표 예정인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 방안을 앞두고

사전 정지 작업 중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던 보건복지부가 말문을 열었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슈퍼마켓보다 약국이 더 많다. 약은 가능한 한

사용을 줄이고 정확히 써야 하는 만큼 일반약의 슈퍼 판매는 적절하지 않다. 슈퍼에서

반창고ㆍ파스 몇 개 더 판다고 제약업체 매출이 크게 오르지는 않는다”고 발언했다.

‘안 된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경실련 “약에 대한 국민 선택권 왜곡말라”

전 장관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성명서를 발표,

“일반약에 대한 국민 편의성을 외면하고 국민 선택권을 왜곡하는 복지부 장관은

각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 판매 규제완화를 둘러싼 이러한 설왕설래에 대해 시민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서울 용산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영설(가명 51) 씨는 “주로 심야 시간대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약을 슈퍼에서 판매한다면 소화제 정도는 갖춰 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며 “어떻게든 빨리 결정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약사들의 의견은 물론 다르다. 서울 동작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송 모(58) 약사는

“어차피 결정될 일이라면 결론이 빠를수록 좋겠다”며 “자양강장제나 소화제, 진통제

등을 슈퍼에서 판다면 동네 약국은 수익성이 떨어져 병원 근처로 옮기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처럼 약 사는 데 불편한 나라 없을 것”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미국에서 초, 중, 고교를 다니다 한국 대학에 진학한 케빈

최(23) 군은 “미국에서는 소화제나 설사약 같은 상비약은 슈퍼에 들어가 다양하게

진열된 것 중 가격이나 용도가 나에게 맞는 것을 고르면 되는데, 한국에선 이런 선택권이

전혀 없이 약사가 주는 약만 사야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LA에서 사업을 하면서 수시로 한국을 방문하는 김한준(47) 씨도 “한국처럼

약 사는 게 불편한 나라도 찾기 힘들 것”이라며 “약국에서 약을 달라고 하면 약사들은

일주일치나 되는 많은 약을 주고 그러면 나는 ‘하루치만 필요한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하고, 약사는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하고,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우리와 미국은 약 판매에 대한 규제가 다르지만, 앞으로

한미 또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한국의 약 판매 규제 내용에

대한 전면수술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부처 이기주의나 업계 이익을 대변할 것이

아니라, 국제 기준에 맞으면서도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도록 법을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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