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광이 ‘황금알’을 낳을까

"지자체 마다 난리입니다. 서울 강남구청은 삼성서울병원, 송파구청은 서울아산병원, 서초구청은 서울성모병원에 의료관광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인데, 글쎄요…"

정부가 ‘글로벌 헬스케어’를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정해 의료관광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최근 만난 의대 교수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였다. 일부 언론은 정부 부처의 엇박자 때문에 ‘황금알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고 닦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 민영화와 민영보험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자칫하면 소탐대실이 되기 쉬운 것이 의료산업 분야다.

‘국민건강 우선’이 선진 모델

의료가 국부증진의 수단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1970, 80년대 전자공학도들이 IT 바람을 일으켰듯, 1990년대에 의대에 몰렸던 수재들이 의료산업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그러나 왜 하필 의료관광인가? 의료관광으로 막대한 외화를 버는 선진국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나라는 특수한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인도 태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이다. 왜 의학 선진국에서는 의료관광을 전략적으로 육성하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의료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다. 어머니가 가족을 잘 챙겨주면 아버지는 밖에 나가 많은 돈을 벌어오고 자녀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어머니가 직접 돈을 버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선진국은 자국의 의료시스템을 통해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의료시스템이 잘 구현될 때 얻는 기회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의료관광 활성화는 시장 원리에도 어긋난다. 의료관광의 최대 수혜분야는 성형, 피부미용, 미용안과, 건강검진 등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다. 최근 10년 동안 의료의 인적, 물적 자원이 이쪽으로만 몰리고, 생명을 살리는 분야는 홀대했다. 한쪽에서는 공급이 불필요한 수요를 창출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채워주지 못했다.

중환자실이 없어 병원을 떠돌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환자, 응급실 바닥에서 마냥 의사를 기다리는 중환자들은 그 산물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수요ㆍ 공급의 균형을 되찾는 것을 의료관광이 막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수 백억 원을 벌겠다고 수 조원을 잃을지 모른다.

우수한 의료자원을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제시한 ‘글로벌 헬스케어’는 신성장 동력산업의 좋은 주제다. 문제는 철학과 방향, 전문성이다. 우리 의료시스템을 살려 국민을 건강하게 하면서 외화도 버는 선진국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헬스케어 IT(HIT)산업의 육성이다. 의료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 산업에 집중 투자하면 의료수준을 높이고 국민에게 직접 혜택을 주면서 막대한 외화를 벌 수 있다. 의사에게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수술도구 위치를 알려주는 솔루션을 판매하는 독일의 브레인랩, 미국의 건강 의학 포털 웹MD 같은 세계적 성공사례가 있고, MSN 인텔 GE 필립스 등이 앞 다퉈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국민 의료수준 향상과 산업육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이 분야의 올해 예산을 당초 10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늘렸다.

의료시스템 살리는 방향으로

우리도 이 분야에서 선도적 IT 기술과 뛰어난 의사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 국민이 목말라 하는 건강 수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아직 싹도 틔우지 못해 자칫 HIT 후진국이 될 처지다. 선진국 모델을 따를 것인가, 후진국 모델을 따를 것인가. 우리 의료시스템을 살리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흔드는 쪽으로 갈 것인가. 하루빨리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 기사는 한국일보 3월 13일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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