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은 내 모든 정력 쏟아붓는 결전장”

노성훈 교수에게 물어보다

1.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secret habit)은?

밤 10시에 공원을 40분~1시간 정도 걸으며 머리를 정리한다. 환자, 가족, 동료와의

문제 등이 생기면 마음을 가라앉힌다. 힘든 일이나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차분히 선후를 따지는 사고를 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면 대부분 해결된다.

2.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성경)

3.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주위에서는 쉬면서 재충전하라고 권하지만 평소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 특히

환자가 나빠지면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지지만 그럴수록 환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4.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20세 의대생일 때에는 내 중심으로 조급하게 생각했다. 지금은 가족과 동료, 내가

속한 조직인 의대, 암센터, 외과 등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5.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20년 전 조교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65세 환자였는데 담낭과

담도에 염증이 생겨 응급수술을 했다. 전공의가 혈관을 잘못 묶어 터졌는데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도저히 터진 혈관을 찾지 못해 거즈로 막아놓고 선배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환자는 출혈은 멎었지만 한 달 뒤 후유증으로 장 폐색증이 왔고

재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 외과의사는 단 한 번의

실수가 생명을 가른다는 것을 뼈 속 깊이 절감했다. 수술 중에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므로 수술장에서는 모든 지식과 정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진리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다.

6.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외과 선배인 이경식, 민진식 교수다. 두 교수는 성격은 다르지만 훌륭한 인품에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교수는 외과교실의 어머니와도

같았다. 영국신사처럼 예의바르고 깔끔하면서도 따뜻했다. 민 교수는 엄부와도 같아

겉으로 차가워 보이지만 속정이 깊은 선배였다. 원칙적이고 위, 아래가 분명한 분이었다.

전임강사가 됐을 때 “내가 17년 뒤 저런 선배들처럼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노력했다. 두 분은 내게 역할모델이었다.

7.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진행성 위암을 이긴 조준태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술 당시 복막에 암이

전이가 됐다. 전체 림프선 70개 중에 50여 개가 전이가 된 심각한 상태였다. 가족들도

“수술해서 사람만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망설였지만, “60대 초반이니까 희망이

있다”고 설득해 수술했다. 수술은 잘 됐지만 항암제 치료가 고역이었다. 얼굴색이

새까맣게 변하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자, 조씨와 가족은 항암제 치료를 포기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다행히 1년 간의 항암제 치료기간을 잘 견뎌내고 지금은 7~8년 째 건강하게

살고 있다. 요즘도 1년에 한 두 번은 부인과 함께 “교수님, 이 부근에 왔다가 혹시

계신가 해서 들렀습니다”하고 인사를 옵니다. 이런 환자 덕분에 보람과 감사함을

느낀다.

8. 나의 라이벌은?

1993년 미국 연수 길에서 돌아올 때는 지금은 고인이 된 서울대병원 김진복 교수를

라이벌로 삼았다. 김 교수를 뛰어넘는 길이 무엇인가 고민했고,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치료만이 그 길이라고 믿었다. 1990년대 말부터는 일본의 사사코 효고대

교수를 라이벌로 삼았다.

9.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엔지니어인 아버지가 형제들에게는 당신의 길을 권하면서 내게는 안정적인 길이라며

의사의 길을 추천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이 근사하게 느껴져 이 길을 선택했다.

10. 외과의사, 이것만은 갖춰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성실하고 꾸준해야 한다. 외과의사는 환자를 24시간 봐야 하고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5~10년 건강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나는 술 중에서도 소주 ‘처음처럼’을

좋아한다. 초심을 잃지 않으라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11. 이 직업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진행성 위암 환자가 건강한 삶을 되찾을 때다. 수술 뒤 중환자실에 갔던 환자가

회복돼 퇴원하고 나중에 몇 년 째 외래로 찾아오는 것을 맞는 기쁨을 환자나 보호자가

알 수 있을까?

12.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선후배/동료)은?

미국 MD앤더슨암센터에서 연수중인 정재호 교수다. 나를 역할 모델로 여기고 외과에

들어와 위암을 전공하고 있다. 청출어람이 될 듯하다. 보통 임상의사의 연수는 2년이

최장기간인데 MD앤더슨암센터도 강력히 원하고 본인도 더 배울 것이 있다고 해서

병원을 설득해서 1년 더 연수하게 도와줬다. 정 교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소명의식이

남다르고 속도 깊다. 내년 2월에 귀국하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13.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그래도 의사가 될 것이다. 외과의사의 길을 갈 것이다. 술은 좀 덜 마셔야겠다.

1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우선 복막에 전이된 위암 환자를 수술하고 복막에 암이 재발하는 것을 막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다. 위암 수술 환자의 30%는 수술 뒤 평소 식은땀이 나고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어지럼증, 구역질 등을 호소하는 ‘덤핑 증후군’으로 고생하는데, 이를

해결해서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 싶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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