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 논란, 우리에겐 합리가 필요하다

양의학을 공부한 젊고 혈기 넘치는 의사가, 구당이라는 (유명한, 하지만 여러

이유로 논란의 대상인) 사람에 대해

"우리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고 (어떤

자세한 설명을 해서든) 말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왠지 이런 식이 되기 쉽다.

 

일부는 "맞다" 하고 (일방적으로) 따르거나,

다른 일부는 "왜 이렇게 과학 타령이냐, 모든 것이 (서양식의 접근법인)

과학이나 합리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좀 세계관을 넓힐 수 없나?" 라는 식으로

크게 반응이 갈릴 것이라는 말이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보통은 여기에서 해결되지 않는 논쟁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의학’적으로는 판단을 유보하련다. 왜냐

하면 내가 ‘합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의학’적인

합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합리’라는 본래의 뜻에 집중하고, ‘의학’의 좁은

관점을 벗어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합리’란, 보다시피 순 한글은 아니지만 서양의 말이나 개념도 아니다.

그저 ‘이치에 합당함’을 말하는 것이다.

 본래 ‘의학’적인 측면에서의 합리는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객관적으로

검증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고수님 선생님께서 블로그에 쓰신 것과 같은 (이중 맹검 실험처럼) 과학적인 실험이나

연구 방법은, ‘의학’에서의 합리적 접근법 중 대표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의료’라는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합리적 분석’보다

  

의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산업화된 이 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끊임없이 소비한다.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소비의 대상이 되어 가고, 우리는 점점

계산적이 되어 간다.

 

  

10원 한 푼이라도 쓸데 없이 소비해서는 안된다고 배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고,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합리’인

것이다. 

그런데, 의료에서는 유독 이런 것이 희박하다.  

(산업화의 초입에 있기 때문일까? 의료가 가진 여러 특수성 때문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예를 들어 보자.

 감기에 걸렸을 때 주사를 맞으러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이가 많든-적든,

교육을 많이 받았든-적게 받았든

 주사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감기에 걸렸을 때 왜 주사를 맞으려고 하세요?" 라고 따지고

물어보면 어떨까?

  

…뭐, 이런 상황이 되는 것 같다.

정말 대단히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감기에는 꼭꼭꼭 주사를 맞아야만 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사를 맞겠다고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정도로, "뭐, 맞는 게

아무래도 낫잖아.."라는 것이다.

(의사의 변명하는 자세, 또는 오히려 당연한 듯 주사를 마구 처방하는 의사들의

문제 또한 ‘분명히’ 문제이고 잘못되었지만, 이것도 매우 긴 이야기니

다음 기회에 다시 다루겠다)

간편하고, 잠깐 아프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크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나을 것 같아" 주사를 원하듯

검증되지 않았다 할 지라도 왠지 좋을 것 같고 별로 경제적인 부담도 없다면?

게다가..혹시 느끼거나 기대하는 효과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고

느낀다면?

우와, 우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사람들이 혹하기 쉬운, 뭔가 매력적인 그런 소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게 어디 구당의 뜸침뿐이랴,

우리가 많이 마시는 건강 음료, 건강 보조 식품, 건강 보조 기구들, 심지어는

병원에서 버젓이 시행되고 있는 상당수의 처치들도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소비일까?

"(다른 것도 소용 없는데) 이거 좀 해 보면 어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나도 이 비용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한 거라고"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합리적인 소비가 되기 위해서는

(설령 공짜나 다름 없는 것으로 보이는) 그 자체의 비용 외에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 있다.

 바로, 이것이다.

  

..

어떤 것이든 처치나 치료를 받겠다고 생각한 뒤에는 분명히 시간이 지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가 받지 않은 처치. 내가 먹지 않은 약, 내가 하지 않은

검사, 찾지 않은 병원 이용비.

이것들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기회 비용이 어떤 식으로든 발생하는 것이다.

그 순간 뿐 아니라, 계속.

심한 경우를 들자면,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암이나 당뇨를 고쳐보겠다고 시간만

보내다가 좋아질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는 상태를 더 나쁘게 해서 오는 경우도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많고,

작게는 단순한 인후염이라서 병원 한 번 만 갔어도 될 것을 약국에 가서 불필요한

종합감기약 사 먹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방 생약까지 끼워 먹고는 시간만 보내다가

견딜 수 없는 몸살 증상이 생겨서야 병원에 가게 되는 식의 경우는 말 할 수도 없이

많다.

의료에서의 합리적인 소비란, 그래서 다른 어떤 분야에서의 소비에서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의료 소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식당에서 ‘유명 연예인이 먹고 간 집’ 이라고 홍보하면

한 번 가 보는 것 처럼 의료 소비를 하곤 한다.

 

 

이런 이유로,

구당이 박태환을 팔고, 유명인사들이 증언을 하고, 그 사람들을 인용하면서 일종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료 소비라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뜸침이든, 어떤 의료적 소비의 대상이든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을 (솔직히) 파는 사람들은 어느 식당의 뚝배기 정도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똑똑한) 의료 소비자라면

‘해 봐야 손해 볼 건 없지’ 식으로 이런 의료적 이슈를 대하거나,

의료인의 ‘합리’에 대한 주장을 그저 ‘의학적 합리, 과학적 합리’에

대한 아집 가득한 주장으로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늘 하려고 노력하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합리적인’ 소비의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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