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의 억울함 풀어주는 의사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 강신몽 교수

28일 서울 노원경찰서가 숨진 탤런트 안재환 씨 사건에 대해 수사종결을 선언할

수 있었던 데는 부검 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 부검을 통해서만 주검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큰 사건 이외에도 부검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뒤집힌 경우는 많다.

10년 전 8살 남자 아이가 아버지 품에 안겨 개인병원 응급실에 들어왔고, 의사는

배가 아프다는 호소에 주사를 놓아 주지만 아이는 곧 숨을 거뒀다. 아버지는 의료사고라고

주장했지만, 부검 결과 소년의 장이 터져 있었다. 맞아서 숨졌다는 결론이었고, 아버지는

폭행 사실을 자백했다.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 강신몽 교수가 진범을 밝혀낸 사건 중 하나였다. 그는

이처럼 죽은 자들의 몸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이밖에도 교통 사고로 숨진 줄 알았지만 사실은 폭행 당한 뒤 숲에 버려졌던 사람,

추락사로 신고됐지만 떠밀려 죽은 사람 등을 그는 만났고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죽은 자의 진실 밝히며 보람 느낀다

강 교수의 연구실은 매일 아침 6시쯤이면 불이 켜진다. 주로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쯤 출근해 업무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너무 부지런하신 것 아니냐”고 묻자

“젊을 때는 집에 서재가 없어 일찍 연구실로 나왔다”고 답한다. 누구나 다 열심히

노력하며 자신도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대답이다.

20년째 이어지는 습관은 또 하나 있다. 부검이 있는 날이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맡을 부검 생각부터 하는 것, 그리고 묵념하는 것이다. 20년차 법의학자로서

후진 양성이나 연구 쪽에 집중할 만도 한데 아직도 현장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마다 보람을 느끼니까요. 죽은 사람의 진실을 밝히면 기분이 좋죠. 앞으로도

그렇게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고요.”

참관까지 합하면 강 교수는 매년 평균 500건의 부검에 참여한다. 최근에는 최진실,

논현동 방화-살인 사건 피해자 부검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그에겐 철칙이 또 하나

있다. 최신실 씨 부검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로 제3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1987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88~9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근무했다.

98~9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법의학자로 20년을 활동하면서 위기나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생각 끝에 “두

번 위기가 있었다”고만 말했다. 위기의 내용은 끝내 함구했다. 그러면서 “고비를

겪으면서도 단 한번도 그만 두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부나 스님이 종교에 입문할 때 평생을 성직에 바칠 것을 선언하잖아요. 저한텐

법의학이 그래요. 문제가 생겨도 법의학자로서, 그 안에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합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주검의 ‘말’을 듣는다

법의학은 죽은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주는 중요한 분야지만

한국에선 불모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비 법의학도들도 뜻을 갖고 시작했다가

열악한 상황과 강도 높은 업무에 뜻을 꺾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의 경우 1인당 부검 건수가 연간 300건 정도로

업무 과중 상태지만 2001년 이후 현재까지 법의관은 단 한 명도 충원되지 못했다.

강 교수는 여러 현실적 제약에 부딪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 주는 것은 후배와 국민이라고 했다.

“선배로서 뜻을 꺾거나 포기하면 법의학 후배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또,

국민을 떠올리는 이유는 제가 하는 일이 ‘법’의학이기 때문입니다. 나나 너한테

득이 되는지가 아니라 국민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돼요.

거창한 소리로 들릴까 봐 조심스럽습니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지역 연구소는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과 같은 공간을

쓰며 공조 체제를 구성하고 있다. 법의학자로 살아가는 강 교수의 꿈은 무엇일까?

“비과학적인 제도적 절차가 하루 빨리 잘 정비돼 국민과 가족에게 억울한 죽음이

좀 더 분명히 해소 되면 좋겠습니다. 또 학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후배들이 더 큰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책도 쓰면 좋겠고…

그러다 보면 세월 다 가겠죠. 허허허.”

그의 좌우명은 ‘무공허’다. ‘아무 것도 없고 공허한 상태’라는 뜻으로,

직접 만든 말이라고 했다. 불교에서 나온 말이냐고 묻자 “종교는 천주교”라는 대답이다.

종교가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강신몽 교수의 영혼과의 대화는 계속 진행형인데….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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