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에도 등급이 있다

반골 가문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지나치게 예쁜 것, 좋은 말은 ‘두드러기의 항원’같이 느껴졌다. 문근영도 그랬다. 너무 예쁘고 깜찍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일었다.

그러나 최근 그녀와 관련한 보도를 접하며 이 태도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절감했다. 21살의 국민배우.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스러웠다. 몇몇 째마리들이 문근영의 속내를 의심하고 악플을 달고 있지만, 정신의학적으로 열등감의 삐뚠 표현일 따름이다. 이런 막바우들은 기부의 즐거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기부에도 품격이 있고 등급이 있다. 번외(番外)는 기부의 맛을 모르는 불행한 사람이다. 한평생 기부를 하지 않은 ‘무선(無善)’, 기부를 색안경 끼고 보는 ‘편선(偏善)’, 남의 기부를 말리는 ‘반선(反善)’이 이에 해당한다.

하급(下級)에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하는 ‘약선(略善)’, 이익을 셈하고 정치인 등에게 기부하는 ‘환선(換善)’이 있다.

중급(中級)으로는 재산관리가 주목적인 ‘재선(財善)’, 마케팅 또는 명예를 위한 ‘명선(名善)’ 등을 들 수 있다.

이 이상의 기부는 사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처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 또는 자녀, 친구를 기념하기 위한 ‘지선(志善)’, 자신이 좋아하는 대학 문화단체 병원 전시관 등에 기부하는 ‘호선(好善)’, 종교적 신념에 따른 ‘교선(敎善)’ 등은 모두 사회를 살찌우는 거름이다.

기부는 방법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한 푼 두 푼 돈이 생길 때마다 즐겁게 내는 기부, 예부터 동냥치들이 요구해온 그 ‘적선(積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부다.

거액을 기분 좋게 쾌척하는 ‘척선(擲善)’은 사회 구성원 전체를 즐겁게 한다. 특히 미국은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에서부터 최근의 빌 게이츠, 워런 버핏, 테드 터너, 브래드 피트-안졸리나 졸리 부부 등에서 보이듯 이 전통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이런 기부가 서서히 자리잡고 있다. 미래산업 창업자 정문술, 삼영화학그룹 이종환 회장 등은 ‘경주 최부자 정신’을 되살렸다.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온 가족이 단칸방에 살았던 골프 여제 신지애를 비롯해서 ‘탱크’ 최경주, ‘얼짱 골퍼’ 최나연 등의 기부는 청량제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척선이 부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평생 아끼고 아낀 재산을 기부한 ‘위안부 할머니’나 삯바느질을 통해 번 돈을 대학이나 병원에 쾌척하는 할머니들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일 것이다. 문근영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부하는 ‘은선(隱善)’ 역시 최상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엔 말로 우선 기부하는 ‘언선(言善)’이 문제다. 대부분 약선(略善)과 겹치며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거나 법원 판결을 앞두고, 또는 자신의 명예에 문제가 생길 낌새가 일 때 재산 기부를 약속하는 경우다.

그러나 언선 역시 실천에 옮기면 기부자가 달라진다. 기부는 행위자를 한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중독성이 있는 이유다. 사회지도층 인사가 언선을 척선으로 바꾼다면 위선(僞善)에서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무선, 편선, 반선보다는 낫다. 올 세밑에는 보다 많은 사람이 기부의 중독에 빠지기를 빈다.

<이 기사는 한국일보 11월 20일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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