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 마음의 청진기를 대다

그 곳의 사람 사는 이야기 펴낸 공중보건의

대한민국에는 갈 수 없는 땅이 있다. 북녘 땅이 그 곳이다. 가지 않는 땅도 있다.

소록도다.

한센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 자원해 1년 근무를 마친 김범석 공중보건의를

만났다. 그는 1년 간의 소록도 근무를 마치고 현재 국립보건원 인체자원은행에 근무

중이다.

그는 공중보건의가 되면서 1지망으로 역학조사관을 지원했다. 국가 차원에서 시급히

처리할 의료 문제를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연구하고 해결하는 게 역학조사관의 임무다.

그러나 그의 1지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지망으로 희망한 소록도로 보내졌다.

이렇게 그의 인연이 소록도에 닿았고, 그의 마음도 소록도에 닿았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그곳

작년 4월23일 공중보건의로 소록도에 첫 발을 디딘 그는 가족과 함께 그곳에 내려가

한센인들과 1년을 보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소록도 생활을 한 마디로 ‘전원생활’이라고

정리했다.

“좋았던 점과 불편했던 점이 맞물려 있어요. 난생 처음 전원생활을 즐기는 한편,

아이가 아파 소아과를 가려면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가야 했으니까요.”

소록도에서 적응에 대해 묻자 그는 미소와 함께 “사람 사는 곳 다 같지 않나요?

낯선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것은 소록도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소록도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어요. 하나는 사람을 배척하고 피하려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죠.”

그는 실제로 현장에서 소록도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들이 일반적으로 외부인들을

배척하는 것으로만 알려진 것이 아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런 ‘오해’를 조금이나마

해소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록도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천국의 하모니카 ― 청년의사

김범석의 소록도 편지’(휴먼앤북스)를 지난 7월 출간했다.

이 책에는 그가 경험한 소록도의 때 묻지 않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남편이 한센병에

걸리자 아내도 ‘나도 같은 병’이라고 속여 소록도에 살림을 차린 노부부 이야기,

각자 가족과 헤어져 홀로 이 섬에 들어와 엄마와 딸 관계를 맺은 ‘모녀’ 이야기,

중풍까지 걸려 전혀 의사 표현을 못하는 부인에게 하모니카를 불어주기 위해 매일

병원을 찾는 눈 먼 남편의 사연 등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잘 들어주는 게 진료의 첫걸음

그는 소록도의 지난 1여 년 간의 경험을 통해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의사가 있다는 마음과 늘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의사로서의 신념도 갖게 됐다.

“별다른 병이 없는데도 늘 아프다고 찾아오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어디가 아프시냐는

질문을 그치고 ‘무슨 일 있으셨어요’라고 물으니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싸운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하소연을 한참 하시더니 편안히 돌아가셨어요. 의술도 그런 것 같아요.

잘 들어 주는 것이 진료의 첫걸음이란 걸 새삼 깨달았죠.”

소록도에는 ‘수탄장(愁嘆場)’이라는 길이 있다. 슬픔과 탄식의 마당이라는 뜻이다.

이 길은 과거 소록도에서 병원 직원들의 거주 공간과 환자 거주 공간을 나뉘는 경계선이었고,

1950~60년대에는 철조망까지 있었다.

그때 이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한 달에 한 번 면회가 허용됐는데, 감염자와 비감염자로

나뉜 가족들은 길 양쪽에 갈라선 채 혈육의 생사를 확인했다. 혹시 균이 바람을

타고 날아갈까 봐 감염자들은 반드시 바람을 맞으면서 섰던 길이다.

오늘날 이 ‘분단의 장벽’이 사라진

것처럼 소록도에서는 환자와 의사 간에 마음을 주고 받는 진료가 자주 있다고 김

보건의는 전했다. 

어미가 자식을 버리게 만든다는 병이지만

한센병은 나균이 피부와 말초신경을 공격해 발생하는 만성 감염병이다. 잠복기가

5~20년일 정도로 나균의 증식 속도는 매우 느리다. 전염 경로는 뚜렷하지 않지만

결핵균과 유사한 특징이 있어 결핵 예방접종인 BCG를 맞으면 한센병에 대해서도 예방

효과가 있다.

닿기만 해도 전염된다는 오해와는 달리 나균의 전염력은 매우 낮다. 단지 치료를

안 받아 증상이 심한 환자와 진한 접촉을 해야 전염된다. 즉 치료 중인 한센병 환자나

후유증만 가진 사람과는 접촉해도 전염되지 않는다.

소록도 거주자는 현재 630명으로 평균 연령은 74세다. 1천명 대를 유지하던 과거와는

큰 차이가 난다.

김 보건의는 장래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로 암 치료 연구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책에서 봉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봉사활동이란 남을 통해 나를 완성하는 것이지, 남을 완성하고자 자기를 희생하는

일이 아니다. 혹 그렇다면 그것은 한낱 생색내기와 자기 과시에 불과하다. 잠시 내가

희생해 상대방을 바꾸려 했던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오히려 환자들은 봉사활동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닌 나의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그렇게도 어리석었다.’


 

김미영 기자 hahaha@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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