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추천은 미친짓?

"밑에, 밑에 댓글 단 사람입니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화끈한 아날로그 액션이라지만 너무도 터무니가 없는 장면들이 많더군요.. 특히 ‘벤틀리’가 폐차 직전의 자동차에 쫓기는 모습은… 참"—관대하

일단 ‘관대하’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에 관한 저의 글에 단 댓글을 인용하게 된 것을 너그럽게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광고 카피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를 품안에 안고 다른 여자의 체취를 느낀다!’. 적절한 원용(援用)인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아메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허리’하학적인 문구를 들이댔습니다.

시차는 있겠지만 ‘관대하’님께서는 제 추천의 글에 ‘왕 실망을 했는가’ 봅니다. 주절거릴 수 있는 ‘팁’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며 오늘은 ‘영화 추천’에 대한 여러 단상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먼저 본 뒤 주변 지인(知人)들에게 관람을 권유한다는 것! 어찌 보면 상당한 위험한 짓거리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소문에 유명한 김치찌개 집이 있습니다. 묵은지에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찜은 외견상 침이 꼴깍할 정도로 맛있어 보입니다. 일간지, 주간지 등에 게재되는 ‘맛집 순례’에 반드시 거론되는 집입니다.

신문사 선배들의 강추로 그 집을 찾았다가 저는 뜨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일단 김치에서 군내가 너무 심하게 났고 -언뜻 보니 허연 김치벌레도 함께 둥둥 떠 있는 듯- 김치찌개를 담은 양은냄비는 마구 찌그러져 있고 손때가 잔뜩 묻어 있어서 ‘서울역 노숙자들의 살림살이를 훔쳐 왔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더욱 음식 먹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옆 사람의 체온을 느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의 거부감이 컸습니다. 저는 냄새 알레르기가 있어 여름날에는 3번 이상 사우나에 가서 씻어야 하는 유별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가방 속에 늘 칫솔, 가그린, 껌 등은 필수품이구요! ㅋㅋ.

그곳에서는 옆 사람의 어깨, 옆구리를 태연하게 찌르면서 먹는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가 판촉 컨셉인 듯 했습니다. 그 외 추천한 맛 집에 들렀다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해서 ‘신문, 방송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집’, ‘이 골목에서 2번째로 맛있는 집’ 등 다소 삐딱한 간판을 걸고 있는 집을 찾아가는데 의외로 그런 집에서 별미를 맛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영화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축구할 때만 대한민국입니다- 신작영화 관람을 선택할 때 제 1순위가 ‘주변 사람들의 권유’입니다.  ‘나는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영화를 보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발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런 분들도 곰곰 따져 보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든 동기는 인터넷 서핑을 한다거나 신문, 방송 등의 대대적 보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광고 선전물을 유심히 보면 남한처럼 ‘네티즌들이 추천한 1위’, 정체불명의 아이디를 10개 이상씩 인용해서 재미있게 본 이유를 나열해 대고 언론사 2-3년차 영화 기자들의 실명을 들이대서 꼭 보라고 강권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남의 시선’ ‘다른 사람의 눈치’에 좌지우지 당하는 남한 사람들의 은밀한 속성을 간파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봅니다.

똑같은 영화를 관람하면서도 서로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성장 과정, 각자 갖고 있는 정보량, 인지 능력, 세상을 보는 시각 등이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내가 좋게 봤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권유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최근에 아일랜드 음악 영화 <원스>를 강추했는데 거대 지상파 방송국 경제부 기자는 저만 만나면 ‘그 영화에 왜 그리 열광하느냐?  난 따분해서 잤다!’고 항의를 합니다.

2001년 2월 24일 개봉된 칸 영화제 여우상 수상에 빛나는 가수 뷰욕의 영화 데뷔작 <어둠속의 댄서>. 겨울 정동 경향신문사 빌딩 옆에 있는 정동스타식스 극장에서 관람하고 나온 뒤 주변 사람들에게 표를 구입해서 관람을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

반응은? 10명중 7명은 ‘따분해서 죽는 줄 알았다!’ ‘영화가 왜 그리 느릿느릿 전개돼!’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뭐야?’ 등등…

미국, 터키간의 외교 설전을 불러 일으켰던 알란 파커 감독, 올리버 스톤 시나리오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강사로 나가는 고등학교 대강당에서 한껏 폼을 내면서 제작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놓고 DVD 플레이어를 가동시켰는데 상영 시간 20분 정도 지나자 참관 선생님부터 닭 모이를 쪼고 계시더군요.

터키 영화 <욜>,  야니의 1994년 아크로폴리스 공연 실황, <카사블랑카>,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을 영상으로 옮긴 알란 파커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  찰리 채플린 걸작선,  비비안 리의 <애수>,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  스티븐 스필버그의 천재적 발상이 담겨 있는 <대결 The Duel> 등등. 모두 일선 중고등학교 창의적 재량학습 시간에 틀어 주었다가 낭패를 본 영상 목록입니다.

게임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까부수고 날아다니는 장면이 없으면 바로 따분해 하는 것이 21세기 인류들입니다. 작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세브란스>를 보고 분통을 터트렸는데 젊은 관객들을 열광하더군요.  심지어 이 영화는 2007년 11월 KTX 달리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팔 다리가 마구 잘려 나가고 드릴로 인간의 머리를 뚫어대는 영화를 버젓이 가족영화로 상영하는 철도청 관계자들의 배포에 놀란 것이죠!

제가 끔찍하게(?) 본 <강철중>이 상영 3주 만에 전국 관객 300만 명을 돌파했다고 아우성입니다. 이 영화에 고춧가루를 뿌린 저만 쌩 또라이가 됐습니다.

<클로버필드> <숙명> <클로우즈 제로> <아버지와 마리와 나> <패스트푸드 네이션> <플래닛 테러> <아이언 맨> 등. 젊은층에서 열광하거나 격찬한 영화들이었지만 저는 킬링 타임용으로 흘려보낸 최근작입니다. 다행히 잔혹 영상의 종합백화점 <데쓰 프루프> <플래닛 테러>에 대해서도 젊은층 반응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당신한테는 천국이었지만 나는 지옥이었다.’맞습니다. 제가 ‘천국’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영화가 다른 분들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영화를 추천한다는 것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결혼하는 것만큼 ‘미친 짓’> 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추천’이라는 말보다는 ‘이러저러하게 보았다’는 표현을 쓸 계획입니다.

제가 지옥이라고 아우성을 쳤던 <강철중>이 떼돈을 벌고 있는 것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극장 안에서 천국을 만끽한 전국 300만 명 관객을 향해 홀로 지옥의 유황불을 던지고 있는 꼴이라니!!!

오늘따라 유난히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가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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