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마법의 리더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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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케이스 만들어 팀 긴장도 높이는 명수

 히딩크는 시범케이스 만드는 데 명수다. 표적은 어김없이 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선수나 최고참 선수다. 그는 우선 팀을 맡으면, 그런 선수들을 한순간에 바지저고리로 만들어버린다.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무장 해제시켜 버린다. 거의 짓밟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미디어가 만든 스타들의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가장 싫어한다. 한마디로 하늘에 어찌 2개의 태양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직 팀에는 감독의 권위만 인정되어야 하며 그래야 팀이 잘 굴러갈 수 있다는 논리다.

 히딩크는 러시아에 가서도 어김없이 시범케이스를 찾아내 박살냈다. 세르게이 이그나세비치(1979년 출생, 186cm 82kg)가 바로 그 대상이다. 이그나세비치는 러시아의 중앙수비수로 2002년 한국팀의 홍명보 역할을 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는 수비뿐만 아니라 강력한 중장거리 슛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든다. 상대 패스를 가로채면 한방의 역습 킬 패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한다.

그뿐인가.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2007년 8월 대표 소집 당시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천하의 이그나세비치가 귀가조치를 당하는 것을 본 다른 선수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후 재발탁 된 이그나세비치는 히딩크의 완전한 포로가 되어 있었다.     

 히딩크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감독시절 브라질 스타 호마리우(1966년 출생)는 훈련시간에 늘 정시가 돼야 나타났다. 다른 선수들은 보통 10분 전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로지 호마리우만이 딱 정시에 맞춰 당연하다는 듯이 나타났다. 호마리우는 영악스럽게 히딩크의 시계에 자신의 시계를 초침까지 정확하게 맞춰놓은 것이다.

호마리우가 누구인가. 1988서울올림픽에서 브라질 대표로 득점왕(7골)을 차지하며 ‘샛별’로 떠오르고 있었다. 히딩크가 브라질까지 날아가 그를 모셔왔을 정도였으니 그의 콧대가 하늘높이 올라갈 만했다.    

호마리우, 안정환, 홍명보, 다비즈 다루는 용인술

 어느 날 오전 10시에 예정된 팀 미팅 시간에 히딩크는 일부러 자신의 시계바늘을 1분 앞당겨 놓았다. 당연히 호마리우는 1분이나 팀 미팅에 늦게 됐다. 그 때 히딩크는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며 “호마리우, 자낸 미팅에 참가할 필요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호마리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벌금 500달러에, 다음 경기는 벤치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히딩크는 그 후로도 사흘 동안 일부러 말도 걸지 않았다. 덩달아 다른 선수들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히딩크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그가 노린 것은 바로 팀의 긴장감이었다. 사흘 후 루마니아 부쿠레슈팀과의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있었던 것이다.

히딩크는 챔피언스 리그 경기 직전 팀 미팅에서 갑자기 호마리우를 띄우기 시작했다. 전술도 그를 중심으로 짰다. 아인트호벤은 초반에 한골을 내줬지만 호마리우가 펄펄 날기 시작하더니 15분 동안에 3골을 넣어버렸다. 3-1 승리. 경기 후 히딩크는 그의 시계를 가리키며 호마리우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호마리우는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더 이상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2001년 히딩크가 한국에 부임했을 때 안정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대표팀 소집훈련 땐 커다란 외제 고급차를 몰고 나타났고, 그의 소녀 팬들은 그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헤어스타일도 패션모델 뺨칠 만큼 멋졌다. 그는 누가 봐도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축구스타였다.

히딩크가 이걸 모를 리 없었다. 히딩크는 갑자기 그를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해 버렸다. 팬은 물론 축구관계자나 언론에선 왜 그를 뺐느냐며 들끓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선수는 모른다는 듯 무시해 버렸다. 아예 한술 더 떠 “그는 이탈리아 페루자 팀에서 벤치멤버에 불과하다. 그는 대단한 선수가 아니다”라고 소금까지 뿌렸다.

 하지만 히딩크는 암암리에 안정환 매니저에게 ‘그는 여전히 선발될 여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안정환 본인에게도 ‘열심히 하면 언제든 환영 받을 것’이라며 분발을 촉구했다. 히딩크는 안정환이 월드컵에 꼭 출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울러 ‘난 당연히 선발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꿰뚫고 있었다.

 “난 안정환에게 그가 없어도 얼마든지 한국대표팀이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호미리우나 안정환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건드리면 반응한다. 난 그런 선수들을 좋아한다. 축구경기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바로 그 때 결정적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배짱 있고 다루기 힘든 선수가 좋다”

 에드가 다비즈(1973년 출생)는 ‘핏대’다. 성격이 성난 들소 같다. 체구는 작지만(170cm 68kg) 그보다 머리 하나쯤 더 있는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99년 녹내장 수술로 플라스틱 고글을 쓰고 뛰는 유일한 네덜란드선수이기도 하다.

 1996년 그는 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대표팀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욕을 퍼부어가며 히딩크를 맹비난했다. 히딩크는 즉각 그를 대표팀에서 빼버렸다. 그리고 그 후 다비즈에게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언론에서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도 철저히 무시하는 반응을 보였다.

 1998프랑스월드컵이 다가오자 다비즈가 주변 사람들에게 ‘대표팀에 복귀하고 싶다’고 슬슬 흘리기 시작했다. 사실 히딩크는 그가 필요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즉시 그가 있는 밀라노(AC밀란)로 날아갔다. 히딩크는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을 팀에 복귀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비즈는 “난 반드시 선발로 뛰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히딩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축구는 팀 경기인데 그 어느 선수든 특권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비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히딩크와 다비즈의 첫 번째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점점 프랑스월드컵이 턱밑까지 다가오자 다비즈가 또 신호를 보냈다. 이번엔 그가 암스테르담으로 날아왔다. 그만큼 몸이 달았다는 표시였다. 히딩크는 다비즈에게 팀 규율 12개항을 제시했다. 다비즈는 곧바로 그 조건에 동의했다.

다비즈는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한동안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다. 히딩크는 그의 태도를 지켜보며 출전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다비즈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결국 다비즈는 유고슬로비아의 16강전 1-1 상황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골 세리머니를 하던 다비즈는 벤치로 달려와 히딩크와 얼싸안았다.   

 “난 다비즈 같은 다루기 힘든 선수를 좋아한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세계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다. 이제 갓 열일곱 풋내기들도 게임에서 제외되면 ‘왜 자신이 뛸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 난 그런 배짱 있는 태도가 좋다.”   

 천하의 홍명보(1969년 출생)도 히딩크 감독 밑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히딩크는 2001년 온 지 얼마 안돼 한국축구의 리더라 할 수 있는 홍명보를 “몸이 안돼 있다”라는 이유로 대표팀에서 빼버렸다. 한마디로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를 제외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홍명보가 빠지자, 한국대표팀은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젊은 피’들이 펄펄 날기 시작한 것이다. 송종국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송종국은 이름 없는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 만약 홍명보가 있었다면 그는 영원히 벤치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송종국은 홍명보가 없는 사이 홍명보를 능가할 정도로 커버렸다. 이천수, 최태욱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 동안에 팀의 수준이 부쩍 높아진 것이다.

처음보다 한단계 수준 높은 팀 만드는 비법

 당시 아프신 고트비 비디오 분석관은 “2001년 한국이 홍콩 칼스버그컵에 출전할 당시와 1년이 지난 요즘 경기비디오를 분석해 보면 전술이나 선수 운영 면에서 한국팀이 전혀 다른 팀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김남일, 박지성 등 미드필더들은 세계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밀리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이 경기를 지배한다고 했는데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한국축구팬들은 대표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 같다. 한국팀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경기와 선수들의 플레이를 분석하는 입장에서 하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홍명보가 없는 동안 한국팀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홍명보는 다시 히딩크의 부름을 받았지만, 정작 이젠 자신이 한결 높아진 팀 수준에 맞춰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꿰뚫고 있었던 히딩크는 역시 능수능란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명보도 그저 팀원의 일부일 뿐이다. 그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며 잘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때론 “홍명보가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주전을 꿰차겠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부상을 딛고 빠르게 정상 컨디션을 되찾은 데 이어 강한 정신력까지 보이고 있어 흐뭇하다”라며 어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홍명보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주장완장을 김태영에게 줘 버렸다. 홍명보는 말한다.

 “히딩크는 축구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다. 특히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통해 선수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 잘 알고 있다. 보통 지도자들이 선수 잠재력과 투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윽박지르는 방법을 많이 쓰는데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감독과 선수가 목표를 공유하게끔 만든다. 2002년 폴란드전을 하루 앞두고 히딩크는 선수를 하나하나씩 불러 ‘너는 세계 최상팀 선수들의 체력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으니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등을 두드려줬다. 그로인해 선수들은 그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축구에 대해 잘 안다. 그 정도로 경험과 지식이 많은 감독은 흔치 않다. 그의 최고 장점은 ‘전술과 조직력’이며 상대에 따라 맞춤형 선수를 발굴 육성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히딩크는 모래알 선수들을 하나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는 우선 그 팀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적당한 명분을 붙여 잠시 뺀다. 그가 있는 한 다른 선수들은 그 스타선수에게 모든 것을 쉽게 양보해 버리기 때문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자신들이 몇 번에 걸친 패스로 골을 넣는 것보다, 그 스타선수가 단번에 골을 넣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감독이 아무리 훈련할 때 팀플레이를 가르쳐봤자,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선수들은 그 스타선수 한명에게 의존하는 플레이를 펼친다. 그 때까지 배웠던 것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다른 선수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기까지, 잠시 그 스타선수를 팀에서 제외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 스타선수가 돌아올 때쯤이면 이미 팀은 새로운 팀으로 바뀌어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이젠 그 스타선수가 새 팀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개인기술이 팀 기술로 한 차원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뛰어난 선수가 팀을 떠나면 그 팀은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겠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곧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나아가 그 팀은 처음보다 한 계단 더 높은 수준의 팀이 된다. 히딩크는 단언한다.

 “감독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그를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한다. 어렵더라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스타선수들은 팀에서 영향력이 강하다. 그 힘을 조종할 수 있는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감독이 그를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팀이 정말 곤란해진다. ‘수동적 저항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감독은 선수들에게 동기유발을 할 수 없게 되고, 팀은 분열된다. 선수들의 의욕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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