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마법의 리더십’ 1


“히딩크 마법? 그런 건 없다. 축구는 감독의 게임이 아니다. 난 단지 이름 없는 젊은 선수들과 함께 하는 것을 즐길 뿐이다. 그들이 야망과 잠재적인 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내가 가진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그러면 그들도 똑같은 에너지로 보답한다. 그렇다. 그라운드에서 즐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공부한 적도 없다. 그러나 축구지도자는 기술적인 지도 외에 선수 개개인의 심리적인 특징과 성격을 파악해 이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결코 마법사가 아니다. 늘 부족하다고 느껴 계속 공부하는 아마추어일 뿐이다.”
<거스 히딩크 러시아 축구국가대표 감독>


도대체 히딩크는 어떤 사람인가. 축구도사인가 아니면 마법사인가. 그는 가는 곳마다 펑! 펑! 꽃을 잘도 피운다. 손만 대면 시든 꽃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정말 신통방통하다. 어떤 사람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하여 피눈물 나는 노력을 쏟아 붓는다. 소쩍새가 피나게 울고, 무서리가 내리는 숱한 밤을 보낸다. 하지만 히딩크는 ‘어퍼컷 세리머니’ 몇 번하면 끝난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으로 올려놓은 거야 그럴 수 있다 치자. 사실 축구팬들은 네덜란드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고 해도 깜짝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네덜란드는 누가 감독을 하더라도 언제나 우승할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호주, 러시아 등 맡는 팀마다 최고성적

그러나 2002한일월드컵 한국의 4강은 다르다. 한국은 그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본선에서 1승을 올리지 못했다. 5회 진출에 14전4무10패. 그런 팀을 하루아침에 세계 4강에 올려놓았다. 그 뿐인가. 2006독일월드컵에선 호주를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더니, “어~어~” 하는 사이에 호주축구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까지 끌고 갔다.

더구나 당시 히딩크는 네덜란드 프로팀 PSV에인트호벤 감독을 겸하고 있었다. 그는 2005년 7월부터 1년 동안 유럽과 호주를 분주히 오가며 두 팀을 지도했다. 보통 감독이라면 한 팀 지도하기도 힘들 텐데, 그는 “뭐 대수냐”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감독이라는 자리를 맘껏 즐겼다. 도대체 히딩크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축구변방 호주를 강팀으로 만들었을까?

러시아라고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히딩크는 독일월드컵이 끝나자 이번엔 유럽축구의 변방 러시아를 맡았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아무리 히딩크지만…”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예상은 또 빗나갔다. 그는 보란 듯이 유로2008 예선에서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따돌리고 러시아를 본선 무대에 올려놓았다. 본선에선 지난 대회 우승팀 그리스, ‘바이킹 군단’ 스웨덴을 연파한 뒤 8강에서는 자신의 조국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마저 3-1로 꺾어버렸다.

단기전, 빅게임 땐 감독의 힘이 절대적 비중

정말 감독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축구팀 전체가 180도 확 바뀔 수 있을까? 히딩크가 손만 대면 어떻게 하나같이 ‘마법의 팀’으로 변신할까? 축구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보통 축구에서 한 팀의 에너지는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시된다. ‘T(팀 에너지)=11×χ(감독 역량) +α(팬, 언론, 축구협회 지원…)’. 즉 선수 11명 개개인의 힘은 감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1보다 더 커져 20도 될 수 있고, 그보다 작은 5도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엔 팬이나 언론 등의 지원도 힘이 된다. 하지만 결국 감독의 역량이 결정적 변수라고 볼 수 있다.

감독은 축구수준이 낮은 팀일수록 그 비중이 커진다. 한국이나 호주, 러시아 같은 축구 변방국가일수록 감독의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브라질,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잉글랜드 같은 축구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감독의 비중이 작아진다.

선수들의 기술이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데다 개성까지 강하기 때문이다. 선수들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축구철학이 있고, 그만큼 감독의 말이 잘 먹히지 않는다. 한국이나 러시아 선수들이 히딩크의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감독은 단기전이나 빅게임일수록 그 역할이 커진다. 축구에서 FA컵 결승전이나 정규 시리즈 우승을 다투는 빅게임일수록 감독의 역량이 승부를 좌우한다. 그래서 축구명장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축구 본선 같은 큰 무대에서 나온다. 물론 정규리그 같은 장기시리즈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명장도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렇다.      

정규리그에선 아무리 약한 팀이라도 보통 10번 경기하면 3번은 이긴다. 거꾸로 아무리 막강한 팀이라도 10번에 3번은 진다. ‘최고승률 7할에, 최저승률 3할’이 정규리그의 법칙이다. 팀 스포츠에서 장기시리즈는 감독 역량보다는 팀 전력이 좌우한다. 전력이 풍부해야 7할 승리를 이룰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전력이 약하면 10번에 3번 정도는 어떻게 이길 수 있겠지만, 시리즈 우승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기전이나 빅게임은 이와 전혀 다르다. 감독의 역량이 절대적이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 전력의 99%를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선수 11명의 힘을 묶어 그 총합이 11보다 더 큰 15~20을 만들어냈다. 선수들이 가진 각각의 능력을 150~200% 발휘하도록 만들었다. 히딩크가 질 수 있는 게임을 무승부로 만들고, 비길 수 있는 게임을 이기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한눈에 선수 마음 꿰뚫어보고 낚아채는 천재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히딩크는 그것을 어떻게 이룩할 수 있었을까? 호주 축구대표팀 주장 마크 비두카(33)는 말한다. “히딩크 감독은 내가 그동안 겪어본 감독 가운데 최고였다. 감독은 선수 관리와 전술 등 2가지 측면에서 축구팀을 이끄는데 히딩크는 전술은 물론 특히 선수 관리 측면에서 독보적이다. 난 히딩크처럼 모든 선수들이 팀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충성하도록 만드는 감독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나도 히딩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바칠 수 있다."

히딩크는 선수들의 마음을 낚는 데 천재다. 그는 호주대표팀 선수들의 마음을 간단하게 훔쳤다. 그리고 모래알 같았던 천둥벌거숭이들을 하나로 묶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그는 2002년 한국에서도 그랬고, 2008년 러시아에서도 그랬다. 그 타는 목마름으로 뜨거웠던 2002년 여름, 한국 선수들은 히딩크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그를 따랐다. 그는 ‘교주’였고 선수들은 ‘신도’였다. 그는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고, 선수들은 그를 열렬히 따르는 학생들이었다.

안드레이 아르샤빈(27·제니트)은 러시아의 박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도 역시 히딩크의 열렬한 신도를 자처한다.

“네덜란드인 감독 1명이 11명의 재능 있는 네덜란드 선수들을 물리쳤다. 2년 전 히딩크 감독이 처음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질투했다. ‘너무 많은 돈을 받을뿐더러, 너무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는 우리를 믿어줬고, 그의 믿음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잘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난 유로2008 본선에서 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퇴장을 당해 본선 2게임을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본선무대까지 데려와 준 히딩크 감독에게 진실로 감사한다. 나는 세계 최고의 감독과 함께 해서 행복하다. 그의 팀 일원으로서 진정으로 즐겁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줬고 우리를 믿는다. 그것이 우리가 더 잘 뛸 수 있는 이유다.”
 
흐트러진 정신 다잡는 말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그렇다. 히딩크는 사람의 마음을 한눈에 꿰뚫어 본다. 척보면 그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다 읽는다. 그리고 단숨에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결코 뜸을 들이지 않는다. 때로는 화려한 언어와 유머로, 때로는 따뜻한 스킨십이나 짓궂은 장난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르르 녹게 한다. 선수들은 기꺼이 그의 포로가 된다. 즐겁게 신도가 되길 자청한다. 히딩크는 심리전의 도사인 것이다.

히딩크는 2002월드컵 당시 설기현에게 매일 경기에 앞서 ‘나는 잘 생겼다. 나는 최고선수다’라고 거울을 보며 3번씩 외치게 했다. 또 한편으로는 코치진들에게 ‘이천수가 만약 골을 넣더라도 일부러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소심한 설기현과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이천수의 심리를 손바닥 보듯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 분데스 리가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2년 월드컵 때, 꿈에 그리던 16강 진출을 해내고 우리는 완전히 들떠 있었다. 막내들이었던 나랑 이천수는 물론이고 형들도 16강전 스코어 맞히기를 하면서 맘껏 떠들고 웃으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때 히딩크 감독이 조용히 옆방으로 불렀다. 모두 밥숟가락을 놓고 쏴—! 하는 분위기로 일어났다. 히딩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너희들한테 좀 풀어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러지 마라.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화를 낸 것도, 질책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마 이때 히딩크가 화를 냈다면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게 분명하다. 감독의 질책 아닌 질책을 들은 우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고, 이탈리아를 꺾고 8강으로 GO! 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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