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에서 부르는 ‘망부가’

며칠

전 한국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문득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맞은

편에서 오던 어느 노신사 한 분이 보일 듯 말 듯 조용한 미소와 함께 목례를 보내고

있었다. 안면이 없는 분이니 필경 내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표하셨으리라.

그런데 저 웃음은, 저 새털같이 가벼워 보이는 어깨는, 저 단정하게 빗어 올린

흰 머리는…. 너무도 친숙하다. 게다가 약간 슬퍼 보이는 저 눈매는, 저 쓸쓸해 보이는

야윈 목선은…. 아 아버지!

친숙함의 원인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목이 따갑고 눈두덩이가 뜨거워져서 더 이상

장을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저 만치로 옮겨가신 그 노신사를 따라 가서 세월에 눌린

좁은 어깨를 보듬어 안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저녁 내내 목구멍에 걸린 울음덩어리

하나를 간신히 참아냈다. 그리고 왜 “불효자들”이 길게 우는지를 이해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분의 못 다 이룬 꿈들을 빼어 놓을 수 없다. 이북 출신인

탓에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시인이고 싶으셨던 젊은 날의 꿈들을

가슴에 묻고 친지도 없는 ‘피난민 2세’인 우리 삼남매를 키우노라 별별 거친 일을

다 하셨던 아버지…. 결국 그리도 그리던 고향도, 아꼈던 자식들의 효도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몇 안 되는 친구를 기억하자면 아버지의 휴식시간마다

꼭 함께 했던 ‘담배’를 들 수 있다.

이제 와서 해보는 불효자의 장탄식이지만, 우리가 아버지의 외로움의 무게를 일찍

이해했더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담배를 끊으시라고 권했다면, 조금 더 사셔서 고향

땅이라도 한번 밟아 보셨을까?

가슴 아린 내 아버지의 추억 끝에 어쩐지 내 아버지의 젊은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

우리 한인사회의 많은 ‘아버지’들을 생각한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어디에서는

쉬울까 마는 타향에서 늙는 일은 어쩐지 더욱 서글픈 일이다.

늘어가는 마누라 바가지를 함께 성토해 줄 어릴 적 친구가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들으면 적당히 부장님, 선배님 하며 대우해주는 땅도 아니고…. 세월이

가도 썩 시원찮은 남의 나라말에, 앙금처럼 쌓여가는 이 외로움을 말대꾸 없이 달래

줄 물건이 담배밖에 또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제 감히 내 아버지께 못 드렸던 진언을 자식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여러 ‘아버지’들께 드리려 한다. 타향살이에 힘든 아버지들의 외로움과 고단함은

이해하지만 담배는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더구나 담배는 그리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햐 하는 날을 당기는 댓가를 요구하는 마약으로 1개피당 7-8분의

수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원컨대 우리 한인사회의 현명한 아버지들은 너무 아쉽고 허망하게 아버지를

잃고 가슴앓이를 하는 딸들을 남기지 않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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