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휴가’ 뒤 입맛없고 무기력… 우울증 아닐까?

“휴가 갈 돈 없었다” 자책감에 궂은 날씨 겹쳐 기분 악화

하루 종일 멍하고, 왠지 모르게 힘들다는 생각만 한다. 회의에서 상사가 불러도

못 듣고 있다가 동료가 옆구리를 찔러주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다. 밤에는 잠도

안 오고, 아침에는 머리를 엄습하는 묘한 느낌 때문에 괴롭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30.여) 씨는 요즘 여름휴가 뒤 회사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 씨는 예년에는 휴가 때 여행을 다녀왔지만 올해에는

치솟은 기름값과 궂은 날씨 때문에 집에서 보냈다. 남들은 집에 머물며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으로 재충전을 했다는데 이 씨는 힘들기만 하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 씨처럼 스테이케이션을 보낸 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장기간의 휴가 이후 이전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휴가 후 증후군(Post Vacation

Syndrome)’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지만, 국내에서는 제대로 휴가를 못 보냈다는 자책감에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방콕 휴가 증후군’이 부각되고 있는 것.

42%가 “여름휴가 못 갔다”… 해외여행도 10% 감소

올해 한 여론조사 기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42%가 휴가를 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고 여름휴가 피크타임의 해외여행객도 10% 이상 감소할 정도로 ‘스테이케이션’이

증가했다.

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대체로 스테이케이션을 적절히 보내면

정신건강에 좋지만 경제적 이유로 좋아하는 휴가를 제대로 못 보낸 사람은 ‘내가

못나서 휴가를 가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좌절감 등이 우울증세로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올해에는 긴 장마 때문에 일조량이 줄어 우울증세가 심해질 수 있다. 권

교수는 “일조량이 줄면 수면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는 대신 기분에

관여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기 때문에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조량과 우울증 사이의 연관성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으며

이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 쉬는 것을 좋아해

일부러 ‘스테이케이션’을 택한 사람도 우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이유없이 잠 안오고, 밥맛-일할 맛 없다면 일단 의심

정신과 의사들은 스테이케이션으로 인해 멀쩡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평소 증세가 있는 사람은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에서는

휴가철이 지나고 휴가 후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혼자서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

비가 많이 오는 등의 외부 환경요인 때문에 잠시 우울해진다면 가벼운 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생활리듬을 빨리 찾으면 된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와 같은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휴가 같지 않은 휴가’를 보냈다고 괴로워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권 교수는 휴가가 끝난 지 4, 5일이 지나도 △밥맛이 없거나 △잠자는 시간이

계속 불규칙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죄책감이 들고 허탈감이 계속 든다면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을 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권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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