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암투병 가정, 자녀가슴 ‘멍’ 안 남기려면…

암환자 자녀, 죄책감 불안감 조숙화 극복 도와야

최 모(27.회사원.경기 용인시 보정동) 씨는 지금도 암이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최 씨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최 씨의 어머니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최 씨의 가족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37평 아파트를 팔고 작고 허름한

주택으로 이사했다. 최 씨의 어머니는 양쪽 유방을 잘라냈고, 치료에 지쳐 곱던 외모도

어둡고 칙칙하게 변해갔다.

최 씨는 “그땐 누구에게도 엄마가 유방암이란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다.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엄마가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매일

밤을 울면서 보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의 암 투병은 최 씨의 가슴에 시퍼런 멍을

남겼다.

암은 더 이상 ‘희귀병’ 혹은 ‘죽을병’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7년

발표에 따르면  암환자는 2006년 42만 5281명으로 2000년과 비교했을 때 94%나

급증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40~50대가 40.4%를 차지했고, 60대 이상이 50.1%였다.

가톨릭대 의대 강남성모병원 정신과 이수정 교수는 “암에 걸린 부모를 둔 자녀들은

그렇지 않은 자녀들보다 더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것을

잘 해소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정신건강에 해롭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부모가…” 죄책감 갖기 쉬워

자녀 입장에서 내 부모가 남들 부모와 달리 어딘가 아프고, 외모도 변해가는 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는 비교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적응할 수 있지만,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은 논리적인

판단이 안 돼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수정 교수는 “어느 순간 불행이 닥쳤을 때, 자녀들은 ‘엄마에게 왜 그런 병이

생겼을까, 내가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닐까? 전에 내가 엄마에게 화가 났을 때 엄마가

병이 났으면 좋겠어,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던 것 때문일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들을 마냥 방치해두면 성격이 부정적, 소극적, 폐쇄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장했을 때에도 어떤 판단을 할 때마다 ‘이것은 내 탓’이란 생각을

하는 유형이 될 수 있다. 이럴 땐 자녀가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지할 사람 있으면 불안감 줄이는 데 도움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부모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을 느낀다. 특히

부모 중에 암 환자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가 치료 혹은 요양 때문에 자녀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낼 때 더 큰 불안을 갖는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과 유한익 교수는 “유방암으로 입원한 엄마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막연하게 엄마가 혹시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서 행동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고, 학교도 안 가려고 하고, 학교에 있을

때에도 집으로 전화를 여러 번 하는 등 분리불안증 증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주로 어린 나이엔 엄마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엄마가 암에 걸려

자녀를 잘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선 엄마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유 교수는 “어릴 땐 심한 불안감을 스스로 극복할 수가 없어 불안장애로까지

발전할 위험이 있다”면서 “병에 걸린 부모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그 외의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서 놀이치료를

통해 치료자와의 관계를 통해 효과를 볼 수가 있다”고 말했다.

‘애어른’ 스트레스는 참기보다 표출해야

원래 자녀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더 부모를 위하게

된다. 이른바 ‘애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 3자의 시각에서는 부모

걱정을 하고 도움을 주는 등 바람직한 어린이로 성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정문자 교수는 “애어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 역할까지 하는 등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실제로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거치지 않아 어릴 때 누려야 할 심리적인 성장과정이 충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내 부모가 남들 부모와 다를 때 그에 대해 불만을 갖고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더욱 바람직하다”면서 “자녀가 불만이나

불안을 가슴 속에 가둬두지 않고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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