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美쇠고기 안전하다는 의사 해고하고 시식회엔 참가

“전문가 집단 책임 방기하고 이익만 좇아…” 비판 목소리

대한의사협회(회장 주수호) 간부들이 9일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에 참가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자, 이 단체가 지난 4월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한

쇠고기 수입을 철저히 차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해놓고도 아무 해명 없이 입장을

번복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협은 그동안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니 먹어도 된다는 입장을 발표한 적이 없다. 또 그동안

한 연구원이 과학적 근거를 대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자 이 연구원이

언론에 출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았고 10일 사실상 해임까지 했다.

이 때문에 의협 안팎에서는 “국민이 광우병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의무를 팽개친 채 몸을 사리고 있다가 줄타기를 하고 있다”며 “황우석 사태나 지금이나

똑같다”며 비판이 나오고 있다.

4월엔 "쇠고기 수입 차단해야" 보도자료

10일 주요 일간지에는 의사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는 행사에 동참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게재됐다. 이 자리에서 의협 주수호 회장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0%”라며 “이번 시식행사가 사람광우병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협은 이에 앞서 4월 17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협되자, 22일 ‘정부는

생명을 위협하는 쇠고기 수입을 철저하게 차단해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또 4월 말 MBC PD수첩 방영 이후 5월 초 촛불집회의 열기가 뜨거워지자 ‘전문가

집단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며 논란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태스크포스

팀장은 “내 자녀가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9일 막상 뚜껑을 열자 논란의 핵심에 대한 어떤 책임 있는 언급도 없었다.

의학계에서는 “이런 발표는 왜 했나”는 비난이 빗발쳤다. ‘미꾸라지 의협’이라는

조롱의 목소리도 있었다.

보건의료단체 김종명 정책위원(인의협 정책위원)은 “내용은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짜깁기한 허접한 수준”이라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꾀를 쓴 흔적만 자욱했다”고

비판했다.

한 공중보건의는 “의사협회에서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해 발표한 내용이 생명과학자들의

토론사이트 브릭 소리마당의 논객 ‘피카소’의 글보다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며

“의협이 할 일을 민간 과학자들이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식회선 "광우병 걸릴 가능성 0%"

반면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양기화 연구위원과 연세대 보건대학원 신동천

교수는 5월 2일 정부의 합동 기자회견에 참가해 미국산 쇠고기가 과학적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의협 총무이사가 양 연구원을 찾아가 모든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특히 기자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당시 의협 홍보국은 기자들에게 “양기화 위원이 말하는

것은 의협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기사를 쓸 때 절대 의협 입장이라고 쓰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양 연구위원은 광우병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동료 과학자들과 토론해서 쟁점마다

내린 결론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이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육두문자로 범벅된

온갖 비난을 고스란히 덮어 써야만 했다.

양 위원은 “과학적 증거에 입각해서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이었지만 의협에서는

각종 방송국에서 내게 들어온 토론회 참석 요청을 모두 차단했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의협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즉 사실상의 해고 통보를 받고 10일자로

계약이 끝났다.

"공식입장 오락가락… 누가 지지하겠나"

의협은 9일 미국산 쇠고기 시식 행사가 열린 날에도 ‘행사를 다음날 아침부터

보도해달라’는 상식 밖의 엠바고 요청을 하며 몸을 사렸다. 엠바고는 국가정책의

집행이나 수사의 진행 때문에 필요한 때 기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이지, 이벤트 행사에서

엠바고를 요청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홍보국의 오윤수 국장은 “대한상공회의소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고 군색한 변명을 하더니 기자가 관련사항을 더 묻자 “지금 따지는

것이냐”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의협 간부의 시식회 참가 기사가 나가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등 보건의료단체는 ‘의사협회, 의학회의 미국산 쇠고기 시식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의협의 태도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주 회장은 “인의협은 의사협회의 회원 일부가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인의협의 입장에 대해 의협 회장이 답변하는건 적절치 않다”며 취재를 고사했으며

김주경 대변인은 “의협이 시식회를 한 것은 의학적 판단에 근거한 정치적 행동”이었다며

“의사는 지식인으로서 사회 전반적인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책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오 홍보국장은 “보건의료단체의 성명서 내용은 보지도 않았고, 이런 것을

대응하면 한도 끝도 없다”면서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대한 의협의 기본적인 입장은

기존에 배포됐던 보도자료에 다 나와 있어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협이 광우병 파동 때 발표했던 공식입장은 4월 22일과 5월 9일의 발표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다. 이 발표에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안전하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협 관계자는 “한 단체의 공식입장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데 어떤 회원이 지지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한 의대 교수는

“황우석 사태나 지금이나 전문가 단체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과실만

따 먹으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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