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의 공포영화 생각

고혈압이나 심장병 환자, 공포영화 피해야 할 듯

일찍

폭염(暴炎)이 왔다. 땡볕더위라는 말이 어제오늘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요즘 밤 같은 열대야에는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보며 더위를 잊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지만 올해는 국산 공포영화가 품귀다. 한 달 뒤 선보이는 <고사: 피의 중간고사>

한 편이 고작이어서 검은 집, 해부학교실, 기담, 므이 등이 쏟아져 나왔던 지난해와

대조적이다. 그저께 술자리에서 마침 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불안한데 영화에서까지 불안감을 부채질할 필요가 있을까?”(작가

G)

“현실의 ‘광우병 공포극’을 뛰어넘을 공포영화가 없다. 온 국민이 뇌에 구멍이

숭숭 생겨 죽는다는 공포극을 체험했는데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나올 수 있나?”(후배

K)

그렇다면 공포감을 느낄 때에는 정말 서늘해질까? TV의 ‘납량(納凉) 특집’에서

납량은 여름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바람을 쐰다는 뜻이고 우리말로는 ‘서늘맞이’다.

공포감정은 간뇌의 청반(靑斑)이라는 곳에서 다룬다. 공포란 사람이 위험 요인을

발견했을 때 몸에 경고사인을 보내 도망치거나 싸우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공포상황에서 교감신경이 흥분하고 땀샘이 자극돼 식은땀이 난다. 또 보온하기

위해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또 털 세우는 근육이 수축되면서 소름이 돋는다. ‘모골(毛骨)이

송연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며 이런 과정을 통해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고갱이에는 서스펜스 스릴러가 자리잡고 있는데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서스펜스를 서프라이즈와 비교해 설명했다. 탁자 밑의 폭탄이 아무 예고 없이

터져 등장인물이 죽는 것이 서프라이즈라면 관객이 등장인물이 앉기 전에 누군가가

폭탄을 몰래 설치한 것을 보고 ‘이제 곧 폭탄이 터지는데…’하며 불안해 하면 서스펜스다.

서스펜스 스릴러를 제작하는 사람은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심장 박동 수보다

약간 빠를 때까지 소리의 박자를 조금씩 빨리 변화시킨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를

줄였다가 끔찍한 장면에 소리를 ‘꽝’ 내보내 놀라게 한다.

하지만 되풀이해서 공포영화를 즐기다 보면 건강에 해를 입을 수도 있다. 독일의

본(Bonn) 대학 연구진은 올해 사람들의 혈액을 분석해 불안하거나 겁먹은 사람의

혈액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피떡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전에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

4배 높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물론 1년에 한두 번 납량물을 보는 정도라면 적당한 자극이 되겠지만, 유난히

겁이 많은 사람은 공포물을 보고 난 뒤에도 여진에 고생하므로 안 보는 것이 상책이다.

고혈압이나 심장병 환자도 이런 이유에서 공포영화를 피해야 할 듯하다.

또 미국 위스컨신 보건대 네드 칼린 교수팀의 연구결과 어릴 적에 겁을 먹거나

불안한 경험을 자주 하면 뇌에서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편도(扁桃)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받아 주위가 평온해도 공포감이나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를

따뜻하고 평온한 환경에서 키워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렇다면 ‘겁이 없는 것’은 좋을까? 공포가 인체의 보호본능이니 당연히 좋지

않다. 겁이 없어 ‘간이 부은 사람’은 ‘서프라이즈’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이 칼럼은 한국일보 7월 10일자 ‘삶과 문화’에 게재됐던 것입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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