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쥐 관리 허술 “품질 어떻게 믿나?”

문제 생겨도 원인 몰라… 비싸도 외국산 사용

흰 쥐와 흰 쥐를 교배시켜 갈색쥐가 태어나도록 유전자를 조작했다. 갈색쥐가

태어나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검은색 쥐가 태어났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이다. 당시 한 연구소의 연구원은

국내 업체가 만든 정상쥐를 가지고 유전자 조작 실험을 했다가 이와 같은 엉뚱한 결과값을 얻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실험이었지만 처음부터 정상쥐가 소위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빚어진 사고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때 이상한 결과를 빚게 한 쥐가 어느

시점부터 잘못됐는지 추측조차 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국내 업체는 쥐의 경로과정을

기록해두지 않는 등 허술한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오구택 교수는 “무균(SPF)시설에서 품질이 일정한 쥐가

만들어져야만 실험 결과도 신뢰할 수 있다”면서 “실험자 입장에서는 한 번 믿지

못할 일이 발생하면 문제가 있었던 업체의 쥐를 갖고 실험하는 것을 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입 정상쥐는 혈통-교배-경로기록 명확”

우리나라에서 정상쥐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업체는 오리엔트바이오, 대한바이오링크,

샘타코, 코아텍, 중앙실험동물 등이 있다. 이들 업체는 실험에 쓰일 정상쥐를 생산,

판매하거나 쥐 실험 전반에 걸친 관련 기자재를 취급하고 있어 실제로 쥐 실험 산업을

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 업체의 시설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의 책임연구원은 “국내 업체에서는 쥐 관리를 제대로 못해

오염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순종을 잘못 교배해 잡종이 만들어지는 사례도

있고, 처음에는 괜찮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생산한 정상쥐는 마리당 3000~16,000원으로 값이 저렴하지만 사용하기가 꺼려진다”면서

“외국에서 직수입하는 정상쥐는 가격이 더 비싸고, 통관도 까다롭지만 쥐의 품질이

정확하기 때문에 외국의 정상쥐를 수입해 사용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생화학과 이한웅 교수는 “국내 쥐는 3, 4일이면 얻을 수 있지만 수입하면

미국은 빨라야 2주, 일본은 1주 정도 걸린다”면서 “연구는 시간과의 싸움인데도

정확성 때문에 쥐를 수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업체가 만든 정상쥐는

문제가 생겨도 원인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며 “쥐가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 증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쥐 실험의 전문가들 역시 항공료를 얹어서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외국의 정상쥐를

들여와 실험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의 정상쥐는 혈통부터 교배,

경로 등 모든 기록이 명확하게 기재돼 있는 등 국내 업체가 생산한 쥐와 비교해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도록 꼼꼼하게 관리한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 “요즘엔 오염사고 엄격히 통제”

최근엔 정상쥐를 만드는 업체 사이에서도 경쟁이 번지고 있다. 외국에서 모체를

들여와 혈통을 관리하고 국내 업체 대부분도 SPF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한웅 교수는 “동물실에 질병오염 사고가 일어나면 쥐를 모두 죽여야만 하기

때문에 정상쥐를 만드는 회사 한 군데가 이 시장을 독점한다면 위험부담이 커진다”면서

“여러 업체가 정상쥐를 만들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일수록 이 분야의 전망이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엔트바이오 장재진 회장은 “우리가 만든 정상쥐로부터 문제가 생겼을 땐

이를 과학적으로 명확하고 성실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한다”면서 “과거엔 국내 업체에

대한 지적사항이 있었지만, 요즘엔 오염사고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업체 관계자는 “과거엔 소비자 측에서 한 업체만 선호했지만,

지금은 오염 등의 사고에 대비해 복수 거래처를 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내 업체들이 내년 3월 실험동물 관련 법안 발효에 앞서 쥐의 오염

방지와 품질 관리에 노력을 쏟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생명공학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해

공신력 있는 결과를 얻기도 하고, 일부는 외국에 검사를 요청하기도 한다.

국내 업체들은 많은 연구자들이 수준 높은 논문을 발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최상의 동물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무균동물실 관리 부실, 설비투자도 인색

그렇다면 국내 업체가 만드는 정상쥐는 어디로 유통될까? 코메디닷컴 취재 결과

국내 업체에서 만든 전체 정상쥐의 40~70%가 국내 제약회사 연구소에 팔리고 있었다.

나머지는 대학 동물실, 생명공학 관련 연구소 등으로 팔린다. 국내 제약회사는 값싼

쥐를 사들여 백신이나 신약개발 실험에 사용한다. 문제는 제약회사의 동물실 관리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한 업체의 공급책임자는 “한미, 태평양, 동아, 일동, LG생명 등 몇 군데를 제외하면

제약회사 중에서 SPF시설을 갖춘 동물실을 갖고 있는 회사를 찾기 힘들다”면서 “쥐를

파는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시설을 안 갖추고 있어도 원하면 팔 수 있지만, 결과값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제약회사가 SPF시설 동물실을 만들려면

설비투자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실험시설을 갖추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책임연구원은 “값이 싼 국내 정상쥐를 사들여 SPF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실험한 내용은 믿을 수가 없다”면서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은 신약개발을

하지 않아도 복제약만으로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쥐 실험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 제약회사는 필요에 따라 유전자조작 쥐로 실험해 신약도 개발하고,

비싸더라도 잘 만든 정상쥐를 사용해 무균동물실에서 실험한다”고 덧붙였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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